
“주주들은 왜 유상증자를 싫어하는 걸까요?”
얼마 전 만난 한 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조(兆) 단위 유증을 발표한 삼성SD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증권업계를 출입할 때 유증은 개미(일반 투자자)들의 적(敵)과 다름없었다. 유증 발표 직후 주가가 하락하는 건 시장의 본능적인 반응에 가깝다. 이유는 단순하다. 주식 수가 늘어나면 지분율이 줄고, 주당 가치가 희석되는 것이 ‘악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유증의 목적이 빚을 탕감하는 데 있을 경우 상황은 더욱 나쁘다. 주주 입장에서는 ‘내 돈으로 회사의 사업 실패를 메우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생긴다. 성장에 대한 기대보다 희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같이 만연한 인식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를 좁히고, 투자자들을 단기 이익에만 매몰시켜 버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금이 어떻게 쓰이고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을지다. 부채를 낮춰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미래를 위한 투자금으로 활용돼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삼성SDI의 유증 결정은 후자의 맥락에 가깝다. 2조2000억 원의 자금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JV) 투자, 유럽 헝가리 공장 증설, 전고체 배터리 시설 투자 등에 쓰일 계획이다. 전기차 캐즘(Chasmㆍ일시적 수요 정체)과 중국의 공세 등으로 지금 당장은 업황이 부진하지만, 향후 다가올 ‘슈퍼 사이클’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을 쌓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3조6000억 원 규모 유증 계획을 발표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출발이 매끄럽지 못했다. 경영권 승계 논란과 맞물리며 시장의 반발을 샀고, 금융당국도 제동을 걸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금 활용 계획은 더 뚜렷하다. 현지 공장 설립 등 해외 지상방산 거점 투자와 방산 협력을 위한 지분 투자에 1조6000억 원을, 미국 중심 해양방산 생산 거점 확보에 8000억 원을 각각 투자한다. 또 국내 추진장약(MCS) 스마트 팩토리 시설과 주요 사업장 설비 및 운영 투자금으로 9000억 원을, 무인기용 엔진 개발 시설에 3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지분 증여,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경영진들의 자사주 매입으로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데도 주력했다.
그럼에도 주주들의 반응이 냉랭한 건 기업들의 잘못된 선례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대주주 이익을 우선했던 결정, 이로 인한 정보 비대칭성 등의 문제들은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
삼성SD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증은 명확한 투자 목적과 구체적 실행 계획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 과거의 관성에 기댄 판단보다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