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서 ‘의대생’은 단순한 신분이 아니다. 초엘리트의 상징이자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 입시의 정점에서 승리했다는 이유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해진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역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모 의대생 사건이 그랬다. 가해자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만점을 받고 의대에 입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엘리트가 왜 그랬을까”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4년 전 사고사로 숨진 의대생 사건도 비슷했다. 한강에서 친구와 함께 있다 실종된 의대생 손모 씨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안전한 귀가를 바란다”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숨진 채 발견된 이후에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에는 ‘한강 의대생 사건의 진실을 찾는 사람들’(한진사) 모임까지 만들어졌다. 이들은 경찰이 해당 사건을 단순 사고로 종결하려 하자 담당 경찰을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실종 사건과는 분명 사회적 분위기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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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대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 간 이어진 갈등도 비슷한 양상이다. 지난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한 의대생들은 ‘동맹 휴학’으로 학교를 떠났다. 정부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도 가능케 했다. 개강을 한 달 이상 미루고 수업 거부 의대생들에 대한 유급, 제적 등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학사 유연화’ 조치를 통해 의대생들을 보호했다. 이 같은 정부 조치에 타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수업에 나오지 않고도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의대생이라서 누린 특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의대생들을 학교로 돌아오게 만든 건 이들에 대한 ‘특혜’가 아닌 정부의 ‘원칙’ 준수였다. 정부는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2026학년도 ‘0명 증원’ 계획을 밝히면서 학생들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학칙에 따라 제적 등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2일 기준 전국 40개 의대생들은 제적 처리된 2명과 군 휴학자 등을 제외하고 전원이 등록·복귀했다. 의정 갈등 1년여 만이다.
의대생들이 등록은 했지만, 실제로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부 의대생들은 ‘등록 후 투쟁’ 방침을 세우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 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5개 의대 재학생 6571명 중 수업에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 예정인 학생은 254명(3.87%)에 그쳤다.
정부는 단순 등록이 아닌 실제 수업에 참여하는 것까지를 ‘복귀’로 보겠다는 방침이다. 의정 갈등의 끝을 정부나 의대생의 승패로 볼 문제는 아니다. 그 사이 붕괴된 의료체계의 복원에 의대생도 이제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