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라운드 투자금 4049억으로 12% 감소
AI 스타트업 투자도 주춤…환경·에너지 투자 급증
올해 들어서도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시드~시리즈A 단계의 초기 투자 위축이 두드러지며 창업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한층 더 어려워지고 있다.
3일 투자 정보업체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의 투자 건수는 243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했다. 같은 기간 투자 금액도 1조2363억 원으로 4% 줄었다.
이 중에서도 초기 라운드(시드~시리즈A) 투자 건수는 29% 감소하며 자금 유치가 더욱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금액은 4049억 원으로 12% 감소했다. 반면 중기 라운드(시리즈B~C)는 투자금이 6024억 원으로 13% 증가하며 비교적 원활한 자금 조달을 이어갔다. 특히 시리즈C 투자가 68% 급증했다. 후기 라운드(시리즈D~프리IPO)는 투자 건수가 20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43% 늘었으나 투자금은 2290억 원으로 21%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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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별로는 바이오·의료·헬스케어 분야가 42건(2489억 원)으로 가장 많은 투자를 유치했지만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 35% 감소한 수치다. 전통적으로 투자 유치가 활발했던 바이오·헬스케어 업계도 시장 불황의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다. 반면, 환경·에너지 분야(2181억 원)는 투자금이 332% 급증하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암모니아 기반 무탄소 발전 시스템 개발 기업 아모지가 820억 원, 재활용 솔루션 기업 리코가 585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세를 견인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강조되는 흐름 속에서 환경·에너지 관련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투자 한파 속에서도 선전했던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의 투자 규모는 올해 다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 AI 스타트업 투자 건수는 41건, 투자 금액은 1949억 원으로 각각 39%, 37% 줄었다. 다만 전체 투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며 AI에 관한 관심이 여전히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작년의 경우 AI 스타트업에만 1조 원에 육박하는 투자가 이뤄졌다. 2021~2023년 AI 스타트업 투자 비중이 총투자금의 8~9%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16%가 몰렸다.

투자 주체별로는 대기업·중견기업(429억 원)과 사모투자회사(297억 원)의 투자금이 전년 동기보다 각각 73%, 68% 줄면서 감소폭이 컸다. 투자 주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벤처캐피털(VC·4234억 원)과 기업형 벤처캐피털(CVC·2354억 원)도 각각 2%, 7%씩 투자금이 감소했다.
다만 전반적인 투자 시장 침체에도 해외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1분기 해외 투자자들의 국내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175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다. 투자 건수가 42건으로 2건 줄었지만, 투자 금액이 증가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된다.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이유로는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등으로 투자자들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대규모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에 따라 초기 스타트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투자 심리가 점진적으로 회복될 수도 있다”면서도 “당장 시장이 반등하기는 어렵고, 실적 기반의 탄탄한 스타트업만이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정세를 포함해 여러모로 불확실성이 1분기에 많았던 거 같아 많은 사람이 혼란한 거 같다”며 “특히 기술투자를 단행하는 VC들의 입장에서는 시시각각 변하고 새롭게 나오는 거대언어모델(LLM)과 기술들에 대해서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이런 세계적 기술 흐름에 대응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한국 기업들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곧 주목받는 기업들도 더 많이 나올 것”이라며 “투자 회복 예상 시점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