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가운데 한국에 가장 높은 26%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예고대로 9일부터 고율 관세를 적용하면 한미 FTA는 사실상 백지화된다. ‘FTA 경제영토’가 붕괴 위기를 맞은 것이니 예삿일이 아니다.
트럼프 청구서가 한국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혹독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FTA 체결국 가운데 호주,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모로코, 페루, 싱가포르, 온두라스 등 11개국은 기본관세율(10%)을 적용받았다. 요르단(20%), 니카라과(19%), 이스라엘(17%)도 한국보다 낫다. 미국이 앞서 25% 관세 부과를 발표한 캐나다와 멕시코 정도만이 한국과 유사한 처지다.
한국은 일본, 유럽연합(EU)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밟고 있었다. 미국과 체결한 FTA 덕분이다. 이젠 다르다. 관세 후폭풍 우려가 커졌다. 그나마 자동차·철강엔 품목별 관세(25%)만 적용돼 이중관세는 피하게 됐다지만,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스타일로 미루어 낙관할 수는 없다.
이번 관세 부과가 아시아권 정밀 타격이나 다름없다는 점도 주목된다. 49% 관세가 적용된 캄보디아를 필두로 라오스(48%), 베트남(46%), 중국(34%), 인도(27%) 등이 주된 표적이다. 초고율 관세의 자세한 근거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이 동남아를 대미 우회 수출의 주요 통로로 활용해온 것과 무관할 리 없다. 미·중 패권 경쟁, 공급망 재편을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이다.
이들 지역을 ‘포스트 차이나’로 점찍고 제조기지 확충에 나선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입을 부수적 피해도 걱정이다.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 생산은 베트남과 인도가 80%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LG도 베트남이 주요 핵심 생산 거점이다. 포스코는 현지 생산 법인 포스코베트남에서 나온 철강 제품 대다수를 미국으로 수출한다.
트럼프는 동맹이나 우방, FTA 국가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 나라별로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구체적인 산식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날 제시한 차트에서 한국은 미국에 50%의 무역장벽을 적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26% 관세가 오히려 ‘디스카운트’(할인)된 것이라고 했다. ‘엿장수 맘대로’ 식의 셈법이다. 한국 관세율 수치가 25%와 26%를 오가는 혼선도 노출했다. 트럼프 관세전쟁이 주먹구구식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방증으로 봐도 큰 무리가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 이럴 것이다.
설혹 못마땅해도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얻을 것은 없다.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절충교역과 소고기 수입 확대 등 이미 노출된 트럼프 패만 봐도 갈 길이 험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냉정하고 현명해야 한다. 줄 것은 주되, 받을 것은 확실히 받아내는 상호주의 원칙과 협상력이 필요하다. 조선, 방산, 원전 등 미국 이익에 부합하는 협상 지렛대를 잘 챙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통상 리더십 복원이다.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로 늦게나마 큰 가닥은 잡힐 것이다. 다 함께 힘을 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