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설이 터져 나오는 현장. 한 신인 아이돌 그룹을 향한 남성의 격한 외침에도 “이해한다”는 반응이 쏟아졌는데요. 왜냐하면, 그 현장이 바로 공항 출국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9일 신인 걸그룹 '하츠투하츠(Hearts2Hearts)'의 등장과 동시에 수십 명의 팬과 취재진, 그리고 이를 둘러싼 경호원들이 일제히 움직였는데요. 경호원들은 이동 동선을 확보한다며 일반 승객들의 통로를 막았죠. 해당 장면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겼고, 이 모든 상황을 목격하게 된 건데요. 네티즌들은 ‘이용객이 이용할 수 없는 공항’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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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에게 공항은 단순히 해외를 오가는 출입국 장소가 아닌데요. ‘공항 패션’이 하나의 장르가 되면서 대중문화 일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죠. 브랜드 협찬 담당 업체들은 공항 패션에 착용해 달라며 거액의 제품을 제공하고, 스타들은 이를 홍보하기 위해 출국 소식을 언론과 팬들에게 알리고 있는데요. 이 노출을 통해 업체는 브랜드 홍보를 소속사는 인지도를 높이는 겁니다. 그러나 팬심과 취재 열기 속에서 사설 경호원이 시민의 통행을 막고, 이동을 제지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홍보와 인지도를 넘어선 ‘논란’이 터져 나오는 거죠.
과잉경호와 공항 민폐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는데요. ‘하츠투하츠’ 논란이 벌어진 같은 날 해외 팬 사인회 일정을 위해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중국 상하이로 출국한 그룹 NCT 위시 멤버 시온의 모습도 비슷한 비난을 받았죠.
출국장 면세 구역까지 시온을 따라 사진 찍는 팬이 구름떼처럼 몰렸고, 경호원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나오세요”라며 주변을 막았는데요. 그러자 이용객이 “뭐 대단하다고 승객들한테 소리 지르고 반말이야? 누군 소리 지를 줄 몰라서 안 지르는 줄 알아?”라고 소리치기도 했죠.
지난해 배우 변우석이 인천공항을 통해 홍콩으로 출국하던 당시 경호원들이 일반 승객들의 접근을 차단하며 ‘플래시 세례’를 퍼붓는 장면도 논란이 일었는데요. 거기다 라운지 인근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승객 항공권을 함부로 검사하는 지나친 경호로 공항 이용을 방해하면서 문제가 커졌죠. 경찰 불심검문조차 경찰관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점에서 사적 권력의 횡포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왔고, 국가인권위원회 민원 제기에 이어 국회 전체회의에서까지 언급됐는데요. 결국, 사설 경호업체 대표 등 관계자가 입건, 송치됐습니다.
2024년 초에는 그룹 보이넥스트도어의 중국 칭다오 공항 출국 당시 경호원이 팬을 거칠게 밀쳐 비판을 받았고, 같은 해 2월에는 그룹 NCT 드림의 팬이 인천공항에서 경호원에 의해 다쳐 경호원이 검찰에 송치됐죠. 이후에도 수많은 아이돌과 배우들의 출국·입국 현장에서 시민과의 충돌 사례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차례 공유됐지만, 대부분은 그저 ‘해프닝’으로 넘어갔고, 책임은 흐릿해졌습니다.
그동안 제기된 비판이 무색하게 또 반복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사설 경호원이 일반 시민의 통행을 막아도 상관이 없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권한은 없습니다. 사설 경호원은 공권력이 없는 민간인인데요. 법적으로는 '경비업법'에 따라 특정 인물의 신변 보호는 할 수 있지만, 일반 시민의 이동을 제지하거나 밀치는 행위는 '폭행죄', 심하면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NCT 드림 팬 부상 사건에서 경호원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죠.
즉, 연예인을 지키겠다며 시민을 밀치고 길을 막는 건 '보호'가 아니라 '침해'인 건데요. 게다가 공항은 '국가기관시설'로, 항공보안법과 공항 이용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임의로 동선을 통제하거나, 일반인의 출입을 제지할 권한은 항공사 보안요원과 경찰에게만 있습니다. 경호원이 자의적으로 시민의 이동을 제지하면 공항 보안규정 위반이 될 수 있죠.
그런데 왜 권한이 없는 사설 경호원의 침해 문제가 벌어지는 걸까요?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입니다. 간단하면서도 복잡하죠. ‘공항 패션’, ‘노출 효과’ 등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수많은 이들이 몰리고 통행이 어려워지고 경호원이 등장할수록 이미지 부각이 커지게 되는 건데요. 그러니 경호는 실질적 보호보다 일종의 '연출'로 기능하는 듯한 느낌을 받죠. 또 팬 문화의 특성상 피해자 스스로 문제 제기를 꺼리거나, 오히려 연예인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는 점도 계속된 ‘과잉경호 문제’가 벌어지게 하는데요.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고, 문제 제기조차 되지 않다 보니 '소리 없는 피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공항 측도 문제인데요. 인천공항은 지난해 10월 '연예인 전용 출입문'을 시범 운영하려다 "특혜 아니냐"는 여론에 하루 만에 철회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구체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대부분 '현장 판단'에 맡기는 분위기죠.
‘하츠투하츠’ 소속사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는데요. 과거 유사한 사건에서도 소속사들은 "죄송하다"는 짧은 사과문을 낸 뒤 빠른 침묵을 택했죠. 경호업체 또한 '현장 안전을 위해 불가피했다'라는 같은 입장만 반복하며, 명확한 기준이나 책임 인식은 뒤처져 버린 겁니다.
이런 문제는 한국만의 특이점이기도 한데요. 일본은 연예인의 공항 출입 정보를 사전 공개하지 않거나, 팬 미팅 성격의 이벤트로 따로 공간을 마련합니다. 미국은 대형 스타의 경우 보안 통로를 이용해 일반 승객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는데요. 연예인을 보호하면서도 시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인 거죠. 또한, 대부분의 해외 공항은 경호 동선 확보 시 사전 신고와 협조 요청이 의무화돼 있는데요. 국내처럼 '현장 임기응변'으로 통제하는 경우는 해외에선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반복 사례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사설 경호의 범위가 명확히 규정돼야 하는데요. 공항과 경호업체, 소속사가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공공장소에서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모든 조처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출국해야 한다”는 시민의 말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