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국내 건설사의 해외수주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가가 떨어지면 해외수주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동의 재정이 악화해 발주를 미루거나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전문가들과 건설업계는 유가가 폭락 수준까지 주저앉거나 저유가가 장기화하지 않는다면 악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한다.
9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날보다 4.6% 오른 배럴당 61.82달러에 마감했다.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 유예 소식이 전해지면서 급등했으나 국제 유가는 최근 내림세를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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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I는 70달러대였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 계획을 밝히면서 급락했고 전날 59.1달러까지 떨어졌다. WTI 선물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21년 4월 이후 4년 만이다.
관세 전쟁 격화로 글로벌 경기침체와 원유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호 관세가 유예됐으나 이런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날 지오바니 스타우노보 UBS 애널리스트는 "석유 수요가 아직 타격을 입지 않았을 수 있지만 향후 몇 개월 동안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이 국내 건설업계 해외수주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하락은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유가가 싸지는 만큼 중동의 재정 여력이 떨어지고 대형 프로젝트를 미루거나 취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총액은 371억1428만 달러인데 그중 49.8%인 184억9421만 달러를 중동에서 수주했다. 올해 1분기도 약 82억 달러 중 60%를 중동이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국제 유가가 2014년 하반기부터 폭락해 2016년 초 20달러대까지 떨어지면서 국내 건설사의 해외수주가 급격히 줄어든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신동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지금 나오는 발주들은 대부분 2년 정도 전의 유가를 바탕으로 예산이 이미 집행된 것"이라며 "유가 하락으로 프로젝트가 조금 지연될 수 있으나 수주 총량을 줄일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재정 균형 유가 하단이 40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며 "이보다 떨어지지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건설사의 해외수주가 이전보다 영향을 덜 받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견해도 있다.
허재준 삼성증권 연구원은 "유가와 해외수주의 상관계수가 2020년까지만 해도 0.8 정도였는데 그 이후로는 0.5 이하"라며 "건설사들이 보수적인 태도로 수주하는 한편 정유·화학 플랜트 중심에서 벗어나 에너지 전환 등 유가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프로젝트로 발을 넓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업계도 최근의 유가 하락을 아직은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유가 하락이 해외수주에 긍정적일 수 없고 장기화하면 충격을 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폭락 수준까지 떨어지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