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종별 의료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의료 전문가들이 주장했다.
대한병원협회는 10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혼돈의 한국 의료, 새 길을 찾다’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 KHC 2025(Korea Healthcare Congress 2025)를 개최했다. 이날 ‘지속가능한 의료전달체계 수립을 위한 제언’ 포럼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들의 토의가 진행됐다.
발제를 맡은 정재훈 고려대학교 예방의학과 조교수는 인구구조와 의료비 지출 증가에 대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좋은 서비스를 더욱 낮은 가격에 제공하기에 최적화된 기관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종합병원보다 단위환자 1명 진료 시 0.8% 낮은 요양급여 총액을 보인다. 같은 수술을 했을 때 상급종합병원이 더 낮은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비용과 서비스는 현실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상급종합병원은 2020년 기준 약 2조4000억 원의 의사 인건비를 집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에 기반해 향후 전공의 업무 축소 및 진료지원인력(PA) 대체 시 인건비가 약 56% 증가할 것으로 추계된다. 상급종합병원 총 매출의 8%까지 추가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정 교수는 “종합병원이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은 적극적으로 종합병원에 넘기고, 대체 불가능한 진료와 연구개발, 신의료기술 도입 등을 담당하면서 ‘최후의 보루’로서의 상급종합병원이 되어야 한다”라며 “전공의와 펠로우 인력 감소를 상쇄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야 하며, 기술사업화와 플랫폼 사업 등으로 의료 이외의 수익을 다각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재원 마련 노력도 촉구했다. 그는 “권역외상센터나 권역심뇌혈관센터 등 기관과 센터 단위별로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건강보험료를 높이거나 조세를 더욱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라며 “국민건강보험료가 2년 연속 동결됐던 것이 상당히 안타까운데, 다음 정부에서는 재원 확보를 위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패널 토의에서는 한국의 박리다매식 병원경영과 의료 남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유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정책연구소 연구소장은 “적은 의사들이 많은 진료를 하며 유지해온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러 분만 등의 필수적인 분야가 무너진 것이 아닌가 싶다”라며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결국 재원마련이 핵심인데, 비용 부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지출구조 합리화를 병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감기나 물리치료를 급여해주는 곳은 없다”라며 “환자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남용하고 있는 부분들이 적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종별 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성인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건강연구원 연구원장은 “병원으로서는 더 많은 수익이 되는, 끌어오고 싶은 환자가 있을 것이다”라며 “인력이나 설비를 고려하면 상급종합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 서비스가 분명 있는데, 이런 서비스를 상급종합병원이 제공하고 싶어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지속가능성 확보에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신정호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기획실 기획실장 역시 “치료 단계별로 분업화해,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하고 급성기가 지난 환자는 종합병원으로 내려보내는 시스템이 된다면 효율적이고 의료비 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이 제대로 되려면 병원장들이 해당 사업 참여가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도록 제도와 건강보험수가가 변화해야 한다”라며 “중증 급성기 환자를 보는 것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병원들은 분명 적극적으로 진료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종별 의료기관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김한수 이대목동병원 병원장은 “진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각 종별 기관의 이점이 있고, 서로의 대체-보완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2차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다”라며 “현재 시행 중인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이 제대로 되려면 2차병원 지원사업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효율성이 극대화돼야 하는데, 현재는 병원이 너무 많고 의료 인력들이 흩어져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