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에서 정치적 올바름(PC)을 중시하는 현상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게임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많은 게임사가 좋든 싫든 PC 요소의 게임 내 비중을 늘려왔어요.
많은 게이머가 PC 비중의 증가로 스토리의 핍진성, 퀄리티가 하락하고, 멋있는 남성은 괜찮지만 예쁜 여성 캐릭터는 배척하는 분위기에 반발했지만, 10년 가까이 이러한 흐름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게임사들의 이러한 PC 중시 분위기는 2024년 후반기를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PC 사상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공공연히 화두에 오르고 있죠. 이러한 분위기를 만든 것은 게이머들의 계속되는 반발, 그리고 PC 농도 짙은 게임들의 기록적인 흥행 참패가 늘어나며 업계에 위기감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제부터 소개할 5개의 작품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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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필드 시리즈’는 2002년 작 ‘배틀필드 1942’로 첫선을 보인 시리즈에요. 인기 면에서는 서양권 최고의 FPS 콘솔 작품이라 평가받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 자웅을 겨룰 정도라는 평가까지 받았죠. 하지만 이러한 명성도 지금은 옛 얘기가 됐습니다.
2018년 작 ‘배틀필드5’는 시리즈의 인기와 수명을 순식간에 단축시킨 작품이에요. 작품 출시 전부터 핍진성과 PC 논란이 따라붙었기 때문이죠. 배틀필드는 작품 대부분이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입니다. 이에 어느 정도 수준의 고증을 통해 핍진성을 확보하는 형태로 게임을 만들어 왔지만, 배틀필드5는 이를 완전히 무시했어요.
게임 출시 전부터 알렉산더 그렌달 수석 프로듀서가 “전작에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며 불을 지폈고, 실제 출시 후엔 여성과 유색인종 캐릭터 비중을 지나치게 높였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예상 판매량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여기서 멈췄으면 좋았겠지만, 개발자는 한 게임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게이머들의 고증·PC 요소 지적에 “못 배운 사람들아. 이건 게임일 뿐이다”라는 망언을 내뱉으며 시리즈의 관짝을 활짝 열어버렸죠.
이후 2021년 배틀필드의 후속작이 나왔지만, 게이머들은 소비자를 가르치는 것도 모자라 멍청하다고 우롱하기까지 한 시리즈에 더는 지갑을 열지 않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배틀필드5는 게임에 PC가 묻으면 흥행에 지장이 생기고, 소비자와 기싸움을 하면 시리즈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업계에 경고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됐어요. 하지만 2018년은 게임사들이 이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이른 시기였죠.
너티 독에서 출시한 2013년 작 ‘더 라스트 오브 어스1’은 비평과 흥행을 모두 잡은 불세출의 흥행작입니다. “영화 역사에 시민 케인이 있다면 게임 역사엔 라스트 오브 어스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죠. 게임성도 훌륭하지만 스토리 면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았어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는 흥행작의 후속작으로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출시됐습니다. 그리고 기대는 실망을 넘어 분노로 되돌아왔죠.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여성 우월주의를 강조한 스토리 라인을 짠 것도 문제였지만, 이를 위해 전작의 백인 중년 남성 주인공을 단순 홀대도 아닌 ‘골프채로 패 죽이는’ 모습을 게임 초반부에 연출한 것은 최악의 한 수가 됐습니다.
게이머들은 온라인상에서 너티 독은 물론 스토리 작가 겸 디렉터인 닐 드럭만을 비판했어요. 이런 비판에 닐 드럭만은 기싸움으로 대응했죠. “팬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다”, “이 가상의 캐릭터들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지만 진짜가 아닌 걸 알고 있지?” 등 팬들을 무시하는 트윗을 쏟아냈어요.
팬들을 무시한 대가는 흥행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다행히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본전엔 성공했지만, 시리즈가 더 이어질 순 없었어요. 몇 년 후 3번째 작품 개발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닐 드럭만은 “3편을 만들긴 힘들 것 같다”는 뉘앙스의 트윗을 올리며 사실상 PC 논란에 의해 시리즈 수명이 단축됐음을 실토했죠.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개발사가 그리 찾아 헤매던 ‘신규 소비층’을 찾긴 했다는 점입니다. 다만 게임 시장이 아닌 드라마 시장에서 찾았죠. 1편 스토리를 바탕으로 제작한 ‘라스트 오브 어스 시즌1’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시즌2도 이달 공개됐어요.
‘콘코드’는 개발 기간만 8년, 비용은 약 5000억 원이 들어간 게임으로 소니가 인수한 개발사 ‘파이어워크 스튜디오’의 작품이에요. 오버워치 시리즈, 에이팩스 레전드 등 히어로 슈팅 게임 장르가 인기를 끌자 소니가 해당 장르 파이를 흡수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든 작품이죠.
하지만 출시 첫날부터 게이머들의 혹평에 시달렸습니다. 가장 크게 혹평받은 것은 게임 캐릭터 디자인이었죠. 다른 PC 논란 작품들처럼 매력이 없고 못생겼다는 수준을 넘어 보고 있으면 불쾌하다는 말까지 나왔어요. 기본적으로 평론가들은 게임 캐릭터 디자인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지 않지만, 이례적으로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디자인이 추하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면 말 다한 셈입니다.
캐릭터 디자인도 별로인데 이 작품은 경쟁작들 대비 차별화된 게임성도 딱히 없었어요. 오버워치 등에서 이미 몇 년 전에 선보인 게임 스타일과 게임 진행 방식을 큰 변화 없이 고수했는데, 굳이 그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이 옮겨갈 유인이 없었죠.
결국, 소니는 이 게임의 라이브 서비스를 출시 2주 만에 종료했습니다. 동시 접속자가 700명을 못 넘기는 상황에서 서버 유지비까지 날릴 수는 없었죠. 20세기에 ‘아타리 쇼크’가 있었다면 21세기엔 ‘콘코드 쇼크’가 게임계를 덮쳤습니다. 콘코드의 흥행 참패 이후 PC 요소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업계 내 목소리가 커진 것은 이 게임의 유일한 의의입니다.
2024년의 최대 흥행 참패작은 콘코드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동시 접속자 수로만 따지면 이보다 더 처참한 성적을 낸 작품이 같은 해에 있었습니다. 바로 반다이남코가 선보인 ‘언노운9:어웨이크닝’이에요. 콘코드의 최대 동시 접속자 수가 700명 정도였는데, 이 게임은 285명을 기록했죠.
이 게임의 실패는 최적화 문제와 구시대적인 그래픽도 문제가 됐지만, 게이머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억지로 못생기게 만든 캐릭터였어요. 게임사에서 캐릭터 외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 모델을 고용하는 일은 흔한데요. 예쁜 모델을 고용하고 일부러 캐릭터 외형을 너프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언노운9은 안야 차로트라라는 모델을 고용했는데, 실제 출시된 캐릭터의 외모는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게이머들은 ‘스윗베이비’라는 컨설팅 회사가 게임 자문에 나선 것을 이유로 꼽았어요. 이 컨설팅 회사는 게임에 PC 관련 자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회사죠. 2024년은 게이머들의 반 PC 정서가 극에 달한 시기였고, 자문까지 해가며 외형을 망치는 게임을 해줄 게이머는 없었어요. 반다이남코의 유일한 위안거리는 소니의 콘코드에 가려져 큰 비난을 받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PC 논란에 휩싸인 작품들은 백인 남성 폄하, 예쁜 여성 캐릭터 배제가 주된 이유였다면 유비소프트에서 올해 3월 내놓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신작 ‘어쌔신 크리드:섀도우스’는 아시아권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가 논란의 중심이 됐습니다.
이전까지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시대 배경에 맞는 인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시리즈 첫 아시아권이자 일본 배경인 섀도우스의 주인공은 흑인 사무라이를 내세우며 논란이 됐죠. 또한, 게임 플레이 중 신사의 제단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며 아시아 문화에 대한 모욕을 줬다는 반응까지 나왔어요.
이전까지의 게임들은 게이머들 사이에서만 분노를 불러일으켰다면, 이 게임은 분노가 정치권으로 번졌습니다. 당시 일본 총리였던 기시다 후미오 역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일본 국회에서도 이 게임과 관련한 논의를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