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파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외환시장 충격이 컸다.
금융시장 불안 확산에 따른 글로벌 신용 경색이라는 외부 악재와 경상수지 적자, 수출업체 선물환 헤지에 따른 달러화 수급 공백, 45조원에 달했던 외인 주식 순매도 등의 내부 악재가 맞물려 야기한 환율 폭등세는 가히 충격이었다.
국내 금융시장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외환시장 충격은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얼마나 개선됐을까? 이에 대한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답변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대부분인 것으로 확인됐다.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집계한 원화의 달러화 대비 절하 폭을 살펴보면 리먼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던 당시 최대 41.5%에 달했던 원화 절하 폭이 9월 3일 현재 12.5% 약세 국면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는 원화와 함께 40%대의 절하 폭을 보였던 러시아 루블화(현재 24.1% 절하)를 제외하면 리먼 사태 직후에는 원화보다도 하락 폭이 컸던 남아공 란트화(현재 4.2% 절상)보다도 되돌림 폭이 적은 수준이다.
최근 투자적격 국가 중 최초로 피치사의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화의 상대적 절하 현상은 두드러진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외환시장 조사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진주요 20개국 이른바, G20 국가 통화 가운데 원화는 리먼 사태 직전과 비교해 절하율과 변동성은 5번째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년간 원화의 달러화 대비 절하율은 -11%를 기록했는데 이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6.7%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일본 엔화와 금융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영국이 각각 16.5%, 4.4%의 절상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취약한 국내 외환시장 수준을 반증하는 셈이다.
환율 변동성도 지나치게 높아 외환시장은 당시 혼란이 가중됐다. 지난 1년간 원ㆍ달러 환율의 일평균 변동률은 0.83%로, 인도네시아 루피아화(0.43%)의 두 배에 달했다.
물론, 이는 수출 중심의 금융 개도국 경제모델에 적용되는 국가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충격이 컸던 외환시장의 경우, 여전히 구조적 취약함을 벗어나지 못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외환시장내 외국인 영향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며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거래 규모도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경제 규모와 비교했을 때 일평균 10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외화 유동성 위기의 재발 방지 차원의 적정 외환보유고 논란 역시 지속되는 상황이다. 지난 1년간의 금융위기를 돌이켜보면 다른 어떤 금융시장보다 외환시장 안정이 우선이라는 교훈에도 달라진게 없다는 반응이다.
한 시장 참가자는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주변 여건에 따라 달러화 포지션을 설정하는데 쏠림 현상이 여전한 모습"이라며 "사실상 역외 참가자들이 좌지우지 하는 시장 여건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환율 변동성이 극심했던 탓에 기업과 은행들의 외환시장에서의 거래가 위축됐고 상대적으로 외국인 영향력은 더욱 공고해지며 재차 환율 변동성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이를 위해 우리나라도 경제 규모에 걸맞는 외환시장 규모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외환 거래량을 지금보다 늘리기 위해 정정 시장조성자를 육성하고 외환시장 문턱을 더욱 낮춰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평균 100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외환 거래량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참가자들이고 선물환 거래도 외국인이 사실상 주도하는 만큼, 시장 진입 규제를 낮춰 외환거래 규모를 확대하면 외국인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결제 수단으로서의 원화 국제화도 반드시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며 "주요국 통화 대비 최고의 유동성을 보이는 원화라는 점에서 시장 규모, 환율 안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규복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외화 유출입과 관련된 외환자유화 조치로 인센티브 및 관세 부여 등을 통한 장기투자자금 유입이 촉진되도록 유인하고 역내 원화결제 확대 등을 통해 원화 국제화가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외환보유고 확충 및 국제통화국과의 스왑 확대 등으로 외환시장 불안 우려를 빠르게 잠재웠지만 외환보유액을 일정 수준으로 꾸준히 유지함으로써 완충 장치를 강화해 나가고 외화유동성 안정 차원의 은행권 단기 외채 비율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