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효율적 활용을 추구하는 외국계 은행들과 달리 국내 은행들은 여전히 수신과 은행채 발행에만 목을 메는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은행들이 이 같은 안정적 자본 조달원에만 집착한 결과 주택담보대출의 유동화 확대를 통한 원화유동성 확보에는 지나치게 소극적 모습이라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이 자본조달 수단으로 수신 및 은행채 발행 이상의 수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는 국내 자본시장내 큰 손으로 자리매김한 은행권이 향후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국내 은행의 자본 조달은 주로 수신과 은행채 발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은행채 발행의 경우 안정적인 자금 조달원으로서 은행권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중요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점은 이견이 없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수신과 은행채 발행외에도 은행은 대출자산,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유동화 확대를 통해 원화 유동성 확보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실제로 과거 은행의 가계 대출이 급속도로 증가했던 2000년대 초반 은행권이 대규모 은행채 발행에 나서는 과정에서 시장금리를 끌어올렸고 이는 원화 유동성 위기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최근 은행권이 보이는 모습이 상당히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매각하거나 자체적으로 유동화하는 방법이 존재함에도 불구 SC제일은행과 씨티은행을 제외하고는 이 같은 자본조달 방법을 시도중인 은행은 전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계 은행과 달리 국내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유동화를 회피하는 성향이 상당히 강하다며 국내 주택담보대출 유동화 비율도 현재 2%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게 자본시장연구원측의 설명이다.
이는 만약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총 500조원이라고 본다면 약 10조원 정도만 주택저당증권(MBS) 매입을 통해 기관투자자들이 공급하고 나머지는 은행이 직접 공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은행권이 수신과 은행채 발행으로 편중된 자본 조달 행태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주택담보대출 유동화를 소홀하 한 결과, 원화 유동성 위험에 꾸준히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박연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따라서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은 단순히 은행권 자본 조달 다양화 차원의 주택담조대출 유동화 유무가 아니라 이미 실행된 주택담보대출의 몇 퍼센트를 유동화 할 것이냐로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연구위원은 "과도한 유동화는 자칫 부동산 시장에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해 집값을 부추길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적은 유동화는 은행권의 유동성 부족을 야기해 은행 시스템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적정 수준의 주택담보대출 유동화 작업에 은행권이 나서는 방향으로 금융당국이 유도하는 한편 은행권도 현 수신 및 은행채 발행으로 편중된 자본 조달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야 은행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받던 원화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국내 은행권 역시 자본시장의 일부로 편입됐고, 그 이전에도 채권발행, 기업금융, 장외파생시장 등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등 '큰 손'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국은 은행 안정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되 은행이 자본시장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토록 관리감독을 해 나간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은행권 역시 자본 조달처를 다변화해 원화 유동성 안정에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