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굿모닝! 짚"

입력 2010-01-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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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메르세데스-벤츠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 출장길에 올랐을 때 일이다.

공식일정이 모두 끝난 저녁, 급하게 건전지를 사야할 일이 생겨 호텔 프런트에 건전지를 살 수 있는 곳을 물었다.

"큰 길 건너에 쇼핑센터가 있어요. 그 지하로 내려가면 '캐리포어'라는 큰 마트가 보일 겁니다. 그쪽에 가면 건전지를 구할 수 있어요."

호텔직원이 친절하게 철자까지 불러주며 알려준 이름은 '캐리포어(Carrefour)'였다. 행여 이름을 잊어먹을까 두려워 걷는 동안 계속해서 '캐리포어, 캐리포어'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알려주었던 마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세상에….

그곳에는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다국적 유통기업 '까르푸(Carrefour)'가 있었다. 철자도 'Carrefour'로 우리네 까르푸와 똑같았다.

다만 우리가 '까르푸'라고 부르는 이름을 싱가포르에선 '캐리포어'로 부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언어와 문자가 지역특성화 또는 토착화 되면서 생겨난 차이다.

그러면 우리가 "까르푸"라고 부르는 이름은 정확할까? 사실 우리 발음도 정확하지 않다. 프랑스인들은 까르푸를 두고 "꺄흐프흐"에 가깝게 발음한다.

이렇게 같은 단어를 갖고도 서로 다르게 부르고 말하는 시대다.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다국적 기업이 발전하고 토착화되면서 일어난 오류 아닌 오류인 셈이다.

이처럼 다양한 브랜드가 세계화에 나서면서 각각 현지식으로 브랜드를 부르고 쓰고 있다. 우리처럼 독창적인 글과 말을 가진 민족이라면 이런 차이는 더욱 심하다. 이런 현상은 자동차업계에 유독 많다.

눈을 국내로 돌려보자. 크라이슬러의 브랜드인 짚(Jeep)이 대표적이다. 국어사전에는 짚을 일컬어 '지프(Jeep): 사륜구동의 소형 자동차. 미국에서 군용으로 개발한 것, 험로를 주행하기 위한 다목적차. 본래는 상품명'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크라이슬러코리아는 이제껏 '짚'이라고 쓰고 읽으며 부르고 있다. 그들의 브랜드 이름을 두고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래저래 우리 표준어인 지프를 두고 '짚'이라고 표기하면 읽기도 쓰기도 불편한 게 많다.

"지프를 타고 간다"는 표현과 "짚을 타고 간다"는 표현을 읽어보자. 전자가 쓰기도 읽기도 한결 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있다. 타이어 브랜드 '굳이어(Goodyear)'다. 원칙적으로 '굳이어'라는 한글 표기는 존재할 수 없지만 한국법인은 '굳이어코리아'로 부르고 제품명도 '굳이어'로 쓴다. 그러나 원칙은 '굿이어'가 맞다. 'Good Morning'을 굿모닝이라고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개정된 외래어 표기법에는 모든 외래어의 받침에 'ㄱ과 ㄴ, ㄹ, ㅁ, ㅂ, ㅅ, ㅇ'만 쓰도록 되어 있다. '짚'의 ㅍ이나 '굳이어'의 ㄷ은 외래어 받침으로 쓸 수 없는 자음이다.

외래어 표기법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고 명시해 두었다. 앞서 언급한 '짚(Jeep)' 역시 크라이슬러 코리아가 등록한 브랜드다. 자동차 등록증에도 '짚'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닌 엄연한 '짚'으로 부르고 써야 할 판이다.

그러나 언론매체라는 특성상 수많은 어린이와 학생들이 기사를 바탕으로 논술을 익히고 배운다는 사실을 되짚어보면 우리 표기법을 거스르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이런 상관관계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당되는 일이다.

나아가 수습시절부터 냉철하고 혹독하게 글쓰기 훈련을 해온 기자들에게 이런 법칙을 거스르는 것, 수많은 사람이 읽는 기사에 알면서도 그릇된 단어를 써야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장고'끝에 내린 결론은 '법인과 브랜드 명'을 지칭할 때에는 그들의 표기를 존중하되, 한글 고유명사를 말할 때에는 한글 표기법을 따르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역시 통일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상황이다.

수입차는 물론이고 앞으로 많은 다국적 기업이 한국시장에 뛰어들 예정이다. 이들은 이땅에서 자사의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는 만큼 자신들의 고유 아이덴티티를 존중하되 한글 고유의 표기법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멋지고 예쁜 이름을 거리낌 없이 부르고 쓸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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