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추락이 시작된 것일까. 2달 전만 해도 강세를 지속하던 달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재연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달러 가치는 실질실효환율(TWI) 기준으로 지난 2개월간 9% 하락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달러는 엔에 대해 85.29엔까지 하락하면서 15년래 최저치까지 추락했다.
그리스발 재정위기 사태로 폭락세를 지속하던 유로 역시 달러에 강세로 돌아섰다. 이날 유로·달러 환율은 1.32달러선에서 움직였다.
달러는 영국 파운드화에 대해서도 꼼짝 못하고 있면서 파운드·달러 환율은 1.60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전문가들은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외환시장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데이빗 블룸 HSBC 외환 투자전략 부문 책임자는 "사람이 외환시장을 움직인다는 점을 가정하면 현재 시장은 마치 정신병원 같은 상황"이라면서 "극적인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고용지표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경기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달러 매도세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디플레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 달러 약세의 주요 배경으로 풀이된다. 제임스 블라드 세인트루이스 준비은행 총재는 최근 "미국이 일본과 같은 디플레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 역시 의회 증언을 통해 "미국 경제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갈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재정위기 이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은 달러 자산에서 이탈한 자금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FT는 미국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아시아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아시아 지역의 자산 매입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7월 인도 주식시장에서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38억달러를 순매수했다. 한국과 대만에서도 각각 20억달러 이상의 순매수가 나타났다.
외환시장에서 싱가포르 달러는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루피와 말레이시아 링깃 역시 달러 대비 1년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달러의 추세적 약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달러 캐리트레이드가 재현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캐리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곳에서 자금을 마련해 수익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 금리가 사실상 제로 수준을 이어가면서 달러로 자금을 마련해 아시아 등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세력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스 리디커 BNP파리바 외환 투자담당 책임자는 "연준은 내년까지 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면서 "캐리 리스크에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달러 캐리트레이드는 인도네시아 채권에 대한 매수세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약세와 맞물려 인도네시아 채권 수익률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정확한 캐리트레이드 규모를 측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7500억달러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4년부터 3년간 이어진 엔 캐리트레이드 규모에 육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