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② 세습의 덫에 걸린 일본

입력 2010-09-07 16:38 수정 2010-09-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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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총리되는 일본, 그 허와 실

(편집자주 : 20년간 총리 14명, 5년간 총리 1인당 평균 재임기간 평균 12개월 미만. 현재 일본 정치의 현주소다. 이름을 기억할만하면 바뀐다는 냉소가 나올 정도로 잦은 총리 교체는 일본의 국정 혼란은 물론 성장 동력을 좀먹고 있다. 3회에 걸쳐 일본의 잦은 리더 교체의 배경과 부작용을 진단한다.)

<글 싣는 순서>

① 별난 평등주의로 경제는 뒷전

② 세습의 덫에 걸린 일본

③ 일본 최고의 총리는 기무라 다쿠야?

일본의 총리는 일단 집권당 총수 자리에만 오르면 누구나 한 번씩 맛보는 자리다. 그러나 1955년부터 54년간 자유민주당(자민당) 외에는 총리 자리를 넘볼 수 없었다.

우파 정당들이 모여 결성한 자민당이 집권한 이후 54년간 정권이 교체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1993년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이 붕괴된 후 연립정권이 성립된 적은 있지만 이는 정권 교체 차원은 아니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자민당을 꺾고 역사적 정권 교체를 이룬 감회가 남달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 정당이 이처럼 장기 집권한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 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역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2차 대전에서 패한 후 1945년 10월 2일부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1952년 4월 28일까지 6년여 동안 연합군총사령부(GHQ)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GHQ 지배 하에서 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본인들은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주권의식이 옅어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

또 일본 국회에 세습 의원이 유난히 많은 것도 문제였다. 유권자들은 선대들과 뜻을 같이하다 보니 선대들이 지지해온 세습의원에 이의 없이 표를 던져왔다.

이 때문에 일본 정치만큼 감동이 없는 정치도 드물다.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의 경우 '변혁'을 부르짖으며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물론 공화당의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까지 누르고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파란만장한 정치사를 통해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집권한 것에 비하면 일본의 정치와는 확연히 다르다.

일본은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 이르기까지 8명 모두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하토야마 직전의 아소 다로, 그 직전의 후쿠다 야스오와 아베 신조, 고이즈미 준이치로 모두 다 2~3세 출신이다.

1991년 미야자와 총리 때부터 계산하면 하토야마 총리까지 12명 중 무라야마 도미이치를 뺀 11명이 세습정치인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명문대 출신이거나 대기업 정부 관청 근무, 명문가 자녀와의 결혼, 선대의 선거구를 기반으로 의원 당선이라는 정해진 수순을 밟았다.

작년 여름 중의원 선거에서 부모나 친척의 지역구를 승계하거나 의원직을 이어받은 후보는 170명, 이중 87명이 당선돼 480명의 전체 의원 가운데 18.1%를 차지했다.

자민당 몰락의 복선을 그은 아소 다로의 경우, 그의 외조부인 요시다 시게루와 장인인 스즈키 젠코는 각각 45대, 70대 일본 총리를 지냈다.

아소 역시 일본의 귀족학교라 불리는 가쿠슈인대학 정경학부를 거쳐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교와 영국의 런던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73년 아소시멘트 사장을 지내다 1979년 정계에 입문해 중의원에 당선된 후 출신지인 후쿠오카에서 9선을 기록, 자민당의 외교 부회장, 부간사장을 지냈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총무상과 외무상을 지냈으며 2007년 자민당의 간사장이 됐다.

2008년 9월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사임하면서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 세 차례의 낙마 끝에 92대 총리에 지명됐다.

그러나 아소 전 총리는 연이은 구설수로 총리 자질 문제가 불거진데다 금융 위기로 인한 35년래 첫 마이너스 성장률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자민당이 집권한지 54년 만에 정권을 야당에 내어주게 됐다.

민심은 여론 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아소 전 총리는 지난해 일본 시사주간지 분슌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전후 최악의 총리' 1위에 선정되는 굴욕을 당했다.

2위는 75대 총리였던 우노 소스케. 그는 취임하자마자 섹스 스캔들이 터진데다 같은 해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에 참패하며 취임한지 2개월 만에 총리직에서 하차했다.

아소 직전 총리를 지낸 후쿠다 야스오와 아베 신조는 전후 최악의 총리 3위와 5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임기 말년의 지지율은 모두 20%대 미만에서 맴돌며 자민당의 몰락을 예고했다.

아베에서부터 하토야마까지 네 총리의 임기는 1년이 되지 못했다.

‘총리 이름을 기억할만하면 바뀐다’는 냉소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일본의 ‘단명 총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 이후 20년간 13명의 총리가 평균 1년6개월의 임기를 넘기지 못했다.

일본의 총리가 이처럼 자주 바뀌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대 총리의 개인적 한계도 있지만 일본의 후진적 정치 시스템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의원내각제이다 보니 국회(중의원)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에 오른다.

문제는 다수당 총재가 파벌의 논리로 정해진다는 점. 따라서 태생부터 정통성이 약하다 보니 쉽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또 일본은 ‘여론조사 정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요 언론사들이 한 달에 한번 실시하는 지지율 조사에 큰 영향을 받는다.

지지율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보니 ‘지지율 하락->국회해산->조기 총선->새 총리 선출’이라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없는 것이 최근의 단명 총리 현상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총리들은 대부분이 전직 총리가 돌연 사임을 발표한지 며칠 만에 덜컥 새 총리로 뽑힌 경우가 대부분.

짧은 기간에 새 총리를 뽑다 보니 사전 검증은 꿈도 못 꾸는데다 총리 본인의 정권 인수 준비시간도 녹록치 않다.

1년간의 예비선거나 당내 경선을 통해 철저히 검증을 받은 뒤 대통령에 선출되고 2개월간의 정권 인수준비를 거쳐 취임하는 미국의 대통령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런 구도에 염증을 느낀 일본 유권자들의 대반란이 2009년 8월 30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시선은 또다시 오는 9월 14일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쏠리고 있다.

이번에는 오자와 이치로 새 총리가 탄생할 것인가.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향해 후퇴하는 가운데 정국 혼란을 초래하며 국가 전반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리더 교체가 달가울 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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