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샌델 교수가 지난 1980년대부터 하버드대 최고 인기 강좌였던 ‘정의(JUSTICE)’라는 주제의 강의 내용을 묶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지난 5월 24일 국내에 출간된 이후 10월 둘째주까지 교보문고 집계로 12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사실상 올해의 책인 셈이다.
이 책에서 샌델 교수는 “정의에는 도덕적 미덕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도덕적 미덕은 기계적 행동이 아니라 실천적 지혜를 습득하여 얻을 수 있어야 하며, 실천적 지혜는 ‘선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의 이성적이고 진실한 상태’라고 규정했다. 그는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무엇이 이로운 지 심사숙고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의 제자인 한나 아렌트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비슷한 논조를 폈다.
종전 후 독일의 유태인 집단학살정책의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에 대한 전범재판을 지켜 본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살아있는 악마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당시 아이히만은 “(자기는) 직무에 충실했고,모든 것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재판에 참여한 다른 유태인들에게) 당신들도 나와 같은 처지였다면, 자신과 똑같이 그랬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렇다면, 그는 무죄인가?
아렌트는 ‘무사유(無思惟)’의 죄라고 규정했다. 성실한 관료였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또 타인이 받을 고통에 대해 마땅히 생각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묘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주창할 즈음이다. 이 대통령은 40대의 김태호 총리를 내세운 8.8 개각을 단행했다. 나름 다목적용이라고 생각했을 법한 간택이었지만, 실수도 그런 실수가 없을 정도로 인사 난맥상만 드러냈다. 결국 김 총리와 두명의 장관 내정자들의 자진사퇴로 끝이 났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정치권의 판도를 바꾸고, 후계 구도를 모색하려던 히든카드가 동네북이 된 데 대해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법하다. 이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란 사회적 화두를 던진 것은 이 뒤끝이다.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 사회 누가 그렇게 깨끗할 수 있겠느냐고 시위하는 듯 보였다. 이 대통령이 던진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에 대해 국민들이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총리 내정자를 비롯해 능력있는 장관 후보자들이 과거의 도덕적 흠결로 인해 그 기회마저 뺏는 것은 지나치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국회 인사검증제도의 문제점을 집중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총리와 장관 내정자들의 부적절한 처신과 위장 전입, 불법 농지 매입 등 위법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병역기피 행위도 우리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주요 가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열심히 세금을 내고, 정부가 하지말라고 하면 하지 않을 만큼 정부 정책을 성실히 따랐다.
이런 이유로 자기의 이득을 위해 법을 어기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고, 다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는소위 사회지도층의 행위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과거 관행이었다거나, 실수라거나, 몰랐다는 말로 위.탈법 사실을 얼버무려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이전 정부에서도 총리나 장관 내정자등의 도덕적 흠결이 도마에 올랐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지도층이 정의에 대해 무개념한 탓이다.
국격을 높이고, 국가브랜드 가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정의를 정립시켜야 한다. 본지가 창간 이념으로 내세운 ‘이노베이션 코리아’도 그 수단이다.
이석중 산업부장 julyn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