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불가리아 북한 유학생 4명이 집단 망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25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원장 이경옥)이 최근 수집해 공개한 불가리아 국립문서보존소 소장 북한관련 기록물에서 이같이 드러났다.
1968년 ‘북한 유학생의 망명관련 기록물’은 1962년 8월 북한유학생 4명이 정치적 망명을 하게 되자 송환을 요구하는 북한정부와 이를 거부하는 불가리아 정부간에 대립이 첨예했고 이러한 분위기가 1968년 해소됐다고 기록했다.
1962년 불가리아로 망명한 북한 유학생 4명 중 3명은 현재 불가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당시 정치적 목적으로 4명이나 집단 망명한 것은 1962년 사건이 최초였다”고 증언했다.
1962년 ‘한·일 수교 반대데모 요청 문서’는 1962년 3월 불가리아주재 북한대사관이 한일수교 반대 집회를 불가리아 지방까지 개최할 것을 요청했다고 기록했다.
북한이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해외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불가리아 지방의 공장·집단농장 등 전역에서 반대집회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외교문서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문서는 남한 사람들의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등지로의 이민에도 반대할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1957년 ‘불가리아의 농업식품 전문가 파견 요청 문서’에 따르면 1957년부터 북한이 매년 불가리아측에 토지개량·벼농사·식물학 등 농업 전문가 파견을 요청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문서에서는 북한 식량문제가 1950년대 말부터 본격화 되었고 1950년대 말부터 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최근 국가기록원이 수집한 해외기록물은 1950~1970년대 북한주재 불가리아대사관에서 생산한 문서와 불가리아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불가리아외무부로 발송한 문서류 등 2000매다.
이들 문서는 최근 불가리아 국립문서보존소가 비밀해제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962년 북한유학생 망명으로 인해 북한·불가리아간 외교관계 갈등이 6년 동안 심화되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이라면서 “그 무렵 동독에서 유학생들의 망명사태가 있었으나 그 외 국가에서의 망명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1960년대 북한 유학생의 본국 소환이 확대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