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국산업단지공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도심 속에 정착시킨 성공적인 모델이자 국내 산업화의 전초기지기도 하다.
1970년대에 국내 수출의 10%를 담당하며 수출전진기지로서의 역할도 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1990년대에 위기를 맞기도 했다.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 한계와 외환위기로 인한 경쟁력 약화로 공동화 현상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997년 정부와 산단공, 입주기업이 ‘첨단화 계획’을 수립함에 따라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구로단지 첨단화계획에 따라 고부가가치 첨단·정보지식형 산업을 유치한 결과 2000년대 중반부터 IT벤처타운으로 급속히 성장하며 2000~2007년은 재도약의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또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IT 중심의 첨단산업단지로 변모하게 된 원인은 파격적 규제완화책(수도권 공장총량제 제외, 입주업종 제한완화, 지식산업센터 건립권한 민간 개방)을 통한 기업들의 입주 확대라는 게 산단공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2000년 키콕스벤처센터(산단공 센터) 건립 이후에는 입주업체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당신 약 712개사에서 단지내 아파트형 공장의 급속한 증가로 2006년 말에는 6074개로 약 9배 증가했다.
2007년 12월 당시 입주업체는 7387개, 고용인원은 9만 7275명으로 늘었고 지식산업 등 비제조업 비중은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2008년 이후 전통 제조업이 사라지고 도시형 첨단 IT업종인 이동통신, 반도체 등의 업종이 주류를 이루며 IT, SW 등 첨단지식산업 분야의 입주기업 1만개사,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공장) 103곳, 젊은이 13만명의 일터로 거듭났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온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산·학·연·관 네트워크 구축으로 산학간의 산업 정보교류, 기술이전 등 연구 및 디자인 중심의 단지로 변모하며 동양의 실리콘벨리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구로디지털밸리 또는 구로디지털단지로도 불리기도 했던 서울디지털사업단지는 그 명칭이 2000년 12월에 변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