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정부가 꺼내든 금산분리 완화 카드를 믿고 지주회사로 전환했던 대기업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장기 표류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금융자회사를 매각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SK지주사 전환유예 기간을 오는 7월 2일로 앞두고 있다. 만약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이 기간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SKC와 SK네트웍스가 보유한 SK증권 지분(각각 7.73%, 22.71%)을 시장에 팔아야한다. 때문에 이날부터 시작되는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 심사작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초 법사위 통과가 무난해 보이던 공정거래법 개정안 조기 처리가 불투명해지며 SK그룹은 금융권 강화에 발이 묶이게 됐다"며 "만약 SK증권을 매물로 출회하게 되면 그룹사 차원의 금융업 강화는 제약이 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올 상반기까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 해도, SK그룹이 과징금을 납부하면서 SK증권을 보유할수도 있다"고 전제하며, "금융지주사 설립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정안이 장기 표류될 시 증권사 매각이 현실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CJ그룹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 CJ그룹도 9월까지 개정안 통과가 무산되면 CJ창업투자를 팔아야만 한다. 특히 이들 기업들은 재작년 마지막 유예기간 2년을 연장한터라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회사와 달리 지주회사는 금융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다. 하지만 개정안의 핵심은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되, 금융자회사 수가 3개 이상이거나 금융회사의 총 자산규모가 20조원 이상인 경우에는 중간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해 금산분리 완화에 따른 위험성을 보완했다.
때문에 이들 기업 외 지주사전환을 한 두산, 코오롱그룹 등도 금융사 매각이라는 숙제가 남아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달 임시국회 통과도 안갯속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여야간 민생현안이 최우선되면서, 자칫 이번 개정안이 대기업에 유리한 입법이라는 인상을 실어줄 법안 통과여부는 사실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주회사 규제가 갖고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고 지주사 전환 기업의 역차별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이 하루빨리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삼현 기업소송연구회 회장(숭실대 법대 교수)은 "지주회사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제도로서, 기업의 지배구조를 법으로 통제하는 후진적 관치경제"라며, "금산분리 원칙 고수라는 정책적 이념은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기업의 경영투명성 제고와 정면으로 모순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수정이 필요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전 회장은 이어 "지난 2009년 정부의 지주회사 전환 유도에 따라 지주 체제로 바꾼 대기업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조속히 개정안이 통과되고, 후속적으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도록 지주회사 규제를 폐지하는 법안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