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4.27 재보선 완승의 기쁨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정국 주도권을 쥐고 참패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는 정부여당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일 것이라 예상됐지만 예기치 못한 분열을 자초, 실리도 명분도 잃고 말았다. 스스로 여야 합의를 깸에 따라 한·EU FTA 비준안은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됐고, 이를 적극 항의조차 못하는 형국이다.
오히려 여권에서 민주당의 갑작스런 내홍으로 두둑한 실리를 챙겼다는 얘기마저 흘러나온다. 당 핵심 관계자는 비준안이 처리된 직후 기자와 만나 “사실 단독강행처리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서 “재보선 참패로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책임론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강행처리에 따른 여론 악화를 뒤집어쓸 이유가 없었다. 이는 김무성 원내대표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이 여야정 회담에서 합의를 했고, 예정된 본회의 당일 합의 파기를 선언하자 민주당 책임을 물으면서 단독 처리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후유증은 일단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집중되는 양상이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 일컫는 사지 분당에서 생환한 손 대표는 향후 대권가도에 순항 신호가 켜졌다고 여겼지만 이내 FTA가 그의 발목의 잡았다. 결국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비화되며 그의 리더십에 또 다시 물음표가 새겨진 것. 특히 FTA 처리 여부로 주목을 받았던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선 입장 표명을 유보하다가 의원총회에 들어서 대다수 의원들이 문제 제기를 하자 ‘4월 국회 처리 반대’ 입장을 들고 나온 것을 두고 결단성의 부재, 우유부단함의 극치라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그가 타야당과의 정책 공조를 이유로 내걸었지만 당내 진보진영의 거센 항의에 물러선 점을 감안하면 중도적 합리성이란 그의 장점은 일정 부문 퇴색됐다는 평가다. 손 대표 측에서도 “왜 본인 생각을 (여당과의) 협상과정에 투영시키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여기에다 박주선 최고위원을 비롯한 호남권 내에서 “손학규 대세론은 없다”며 견제구를 날리고 있는 것도 손 대표에겐 부담이다.
박지원 원내대표 또한 사정은 매한가지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의 절묘한 파트너십으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여의도정치를 일정 부문 복원했다는 평가 속에 차기 당권에도 가장 근접했지만 결국 독단이 재발하면서 임기 마무리를 의원들의 거센 비판 속에 치르게 됐다. 그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면서도 반대 의견을 주창한 여타 7명의 최고위원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협상과정에선 가만히 있다가 여야 합의로 본회의가 예정된 당일에 와서야 문제 제기를 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의원은 “박 원내대표의 유일한 단점은 오버(over)”라며 “자신감에 충만하다가 또 다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말했다.
정동영, 천정배 등 한·EU FTA를 강력 반대한 여타 최고위원들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협상과정엔 가만히 있다가 문제가 불거진 직후에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하는 것은 정략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