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저축은행 비리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이하 특위)의 증인채택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증인신청명단에 여야 현 지도부 및 의원들, 청와대 고위인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거론되며 폭로전의 상처만 깊어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진표 원내대표 및 박지원 전 원내대표, 문희상·박선숙·우제창·박병석·강기정 의원’ 등을 걸고 넘어졌다. 민주당은 ‘홍준표 대표와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두우 홍보수석·백용호 정책실장·이동관 언론특보’를 겨냥했다.
민주당은 결국 “전부 나갈테니 한나라당과 권력 핵심 인사들도 모두 나오라”며 배수의 진을 쳤고, 한나라당은 이에 “포로교환식으로 증인을 불러내자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특위 가동 한 달이 다 되도록 남은 것이라곤 감정싸움 뿐, 이대로라면 내달 5일과 8~9일로 예정된 저축은행 청문회가 제때 열릴 수 있을지조차 의문스럽다.
정치권의 난타전 속에 정작 저축은행 피해대책은 특위 초점에서 멀어지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지난 14일 부산저축은행 본점을 방문했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외친 2백여명의 피해자들의 절규는 상황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곳곳에서 “도와달라”고 눈물겹게 호소해보고 “정치권은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며 따지기도 했다. 특히 “어떤 방법으로 해결 할 수 있는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을 밝혀야지 정치적으로 국정감사가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한 피해자의 지적은 깊이 새겨야 할 지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야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한채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선(先) 불법자금 환수-후(後) 피해대책 마련’ 원칙만 내세우며 정치싸움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명진 한나라당 특위 간사는 18일 기자와 통화에서 “(불법인출 된) 돈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야 (피해배상 자금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우제창 민주당 특위 간사 역시 “불법인출자금, (저축은행) 대주주의 감춰놓은 재산, 특수목적법인(SPC)에 불법대출한 자금을 환수부터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야가 지목한 불법자금은 특위가 정해진 시한 내에 제 역할을 다 해도 모두 환수될까 말까다. 더욱이 증인채택 문제로 파행만 거듭하고 있는 특위 행태를 감안하면, 환수 작업이 본격적으로 착수될 시기는 기약할 수도 없다. 정치권이 싸움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 평생 모은 돈을 한 순간에 잃은 피해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