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된 애플의 공동창업주인 고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에는 잡스가 병상에서도 산소마크스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착용을 거부했다는 일화가 담겨있다.
디자인에 대한 잡스의 무한애정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세계적인 히트상품을 탄생시킨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제품의 디자인은 이제 단순한 물건의 아름다움의 가치를 넘어 혁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팟부터 아이패드까지 애플의 IT 기기들이 마니아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사용자 환경(UI)을 고려한 디자인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전자, 기아자동차, 유니온스틸 등 국내 주요 기업들도 디자인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디자인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 삼성전자·기아차, 유명 디자이너 영입=그동안 국내에는 산업디자인의 전문가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품질은 우수하지만 투박한 디자인 탓에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해외의 유명 제품 디자이너를 영입하면서 디자인 혁명을 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아자동차이다. 지난 2006년 당시 정의선 기아차 사장(현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선진 자동차 메이커를 따라잡기 위한 승부수를 ‘디자인’으로 정하고, 아우디와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책임자였던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다.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차로 스카우트 된 이후 2008년 로체 이노베이션을 통해 호랑이 코를 형상화한 기아차 패밀리 룩(통일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는 K5와 스포티지R을 비롯한 기아차 전 모델에 적용되고 있다.
패밀리 룩이 완성되면서 기아차는 디자인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디자인의 혁신은 제품판매증가로까지 이어져 기아차 실적개선의 일등공신이 됐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2010년형 쏘나타에 유연한 역동성을 살린 ‘플루이딕 스컬프처’ 패밀리 룩을 적용해 한층 발전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현대차그룹은 디자인경영을 통해 고유한 패밀리룩을 완성했고 이를 통해 브랜드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디자인 발전은 생산공정의 발전으로 연결됐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고유의 패밀리룩을 완성하면서 금형기술도 정밀화되는 등 연관산업의 발전이라는 효과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을 영입했다. 독특한 화법과 선이 강한 감성적인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뱅글은 삼성전자에서 휴대전화, TV, 생활가전 등 프리미엄 제품 디자인을 맡을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를 영입한 것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디자인 경영’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지난 4월 정기출근을 시작하면서 서초사옥 10층에 있는 디자인센터에 머물렀으며, 평소에도 제품 디자인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특히 지난 2005년 직접 사장단을 이끌고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둘러본 후 주요 사장단과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고 프리미엄 브랜드 육성을 경영 목표로 제시하고 “디자인, 브랜드 등 소프트 경쟁력을 강화해 기능과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넘어야 한다”고 강조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애니콜을 제외하면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은 1.5류”라며 디자인 혁신을 주문했다. 이후 삼성전자가 선보인 보르도TV는 혁신적인 디자인이라는 평을 받으며 삼성 TV를 세계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삼성전자는 지속적으로 디자이너 영입에 나서면서 현재 디자인경영센터에 1000명 이상의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혁신에 몰두하고 있다.
◇‘B2B’ 기업에도 디자인 혁신 바람= 제품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은 ‘B2C(기업-소비자 거래)’ 기업을 넘어 ‘B2B(기업간 거래)’ 기업으로까지 확산됐다.
동국제강 계열사인 유니온스틸은 최근 프리미엄 컬러강판 브랜드 ‘럭스틸(LUXTEEL)’을 출시하고 국내 유명 아티스트와 함께 관련 전시회를 개최했다.
럭스틸은 디자인을 특화 시킨 제품으로 유니온스틸의 최첨단 프린트 공법을 통해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다양한 디자인을 제공한다.
유니온스틸은 지난 2007년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마케팅팀 내에 디자인실을 따로 마련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를 상대로 한 6명 규모의 ‘럭스틸’ 영업조직을 따로 구성, 향후 럭스틸 영업망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장세욱 사장은 ‘B2D(기업-디자이너간 거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철강제품에도 디자인 혁신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부제철도 최근 철강 제품의 명품화를 선언했다. 올해부터 매년 3개 이상의 명품화 추진 제품을 선정해 ‘동부 프레스티지 제품'(Dongbu Prestige Product)’으로 명명하고 다양하고 차별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분쟁이 제품 디자인으로부터 촉발된 것처럼 제품 디자인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기업의 경쟁력으로 자리매김했다”며 “B2C 기업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 경쟁은 앞으로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