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게으른 눈’으로 불리는 약시는 서양에서 성인 한 쪽 눈 실명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지목될 만큼 무서운 질환이다. 특히 치료 시기에 따라 완치율이 좌우되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약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짝눈·사시가 주원인…시력나쁜 눈 더 많이 써야 = 약시는 시신경이나 망막에 이상이 없는데도 안경을 쓰고도 시력저하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두눈 간의 시력은 시력표에서 두 줄 이상이 차이가 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만 3~6세 취학전 어린이 약 8만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중 264명(0.32%)가 약시로 진단받았다.
약시는 사시, 굴절이상(근시·원시·짝눈 등), 선천성 질환(선천백내장·선천녹내장·각막혼탁 등)이 원인이 돼 발생한다. 대한안과학회가 최근 국내 대학병원 9곳을 내원한 어린이 약시 환자 2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어린이 약시의 원인은 짝눈(부동시)이 56%, 사시가 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짝눈은 눈에 띄는 증상이 없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경우 부모가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사시는 쉽게 알 수 있어 조기 발견이 가능하다. 특히 모든 약시 가운데 원시이고 짝눈인 경우에는 치료가 가장 힘드므로, 다른 약시보다 더욱 신경써야 한다.
약시가 있으면 약시가 있는 눈을 쓰지 않고 약시가 없는 눈만으로 사물을 보려 한다. 따라서 약시 치료의 핵심은 약시가 있는 눈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일정기간 약시가 없는 눈을 안대로 가려주는 ‘가림 치료’와 시력이 좋은 눈에 조절마비제를 넣거나 안경도수를 조절해 좋은 눈을 잘 안보이게 하는 ‘처벌치료’가 주로 쓰인다. 가림치료는 눈을 직접 안대로 가리는 ‘패치(patch)’ 치료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
한승한 대한안과학회 기획이사(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는 “특히 가림 치료는 좋은 눈을 일정시간 동안 안대로 가려줌으로써 시력이 나쁜 눈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게 돼 시력이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며 “가림치료는 약시가 발견되는 즉시, 시력이 나쁜 쪽의 눈이 정상인 눈의 시력과 같아질 때까지 지속해야 하며 재발의 우려가 있으므로 적어도 만 8~9세가지는 지속적으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교수는 이어 “약시 치료는 눈에 자극을 줘 미숙한 시세포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므로 한눈을 가리고 TV 시청이나 전자 오락 등을 하게 하는 것도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치료 적기 놓치면 완치율 23%로 떨어져= 약시 치료에 있어서는 안과 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대한안과학회에서 실시한 어린이 약시 환자 대상 조사에서도 만 4세부터 치료를 시작한 아이들의 완치율은 9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만 8세에 치료를 시작한 아이들의 완치율은 23%에 불과했다.
곽형우 대한안과학회 이사장(경희대 병원 교수)은 “시력은 보통 만 8~9세가 되면 거의 완성되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면 약시 치료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치료 시작 연령이 낮을수록 치료 결과가 좋고 치료기간도 짧다”고 말했다.
어려서 약시가 치료되지 않으면 약시안의 영구적인 시력장애, 입체·거리감각 상실 등이 생기게 된다. 또 차후 정상적인 나머지 한쪽 눈을 다쳐 시력을 잃게 되는 경우 두 눈을 다 못 쓰게 되는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완치율이 높은 만 4세부터는 시력검진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승현 대한안과학회 기획위원(고대안산병원 교수)은 “일반적으로 시력은 만 3세경부터 잴 수 있으므로 이 시기에 안과 검진을 받는다면 약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만 3~4세에 아이들에게 안과 검진을 받게 하는 것은 평생 시력 장애를 예방하는데 매우 중요하며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검진을 의무화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