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극심한 내홍에 빠졌다.
한나라당은 쇄신 방향을 놓고 인적쇄신과 정책쇄신이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은 야권통합의 갈림길에 서 있다. 당내 기득권의 저항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생존이 걸린 문제다 보니 양당 모두 당력이 분산돼 한미FTA 난항의 배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출발점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까지 가세했음에도 참패했고, 민주당은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불임정당의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승자인 박원순 신임 시장 뒤엔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있었다.
◇‘자중지란’ 한나라 = 한나라당은 또 다시 쇄신카드를 빼들었다. 특히 수도권 의원들은 내년 총선 전멸감에 사로잡혀 결사항전의 채비를 갖췄다. “이대로 가다간 당이 망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박 전 대표의 한마디에 제동이 걸렸다. 정몽준·이재오·김문수 등 친이계 잠룡들의 포위를 우려해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책임소재를 청와대로, 방향타를 정책쇄신으로 고쳐 잡았지만 위기감은 여전하다. 특히 안 교수를 통해 분출된 수도권 민심과 여론 풍향계를 자처했던 40대의 이반은 “악몽과도 같다”는 게 소속 의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한미FTA 비준안을 강행처리하지 못하고 여야 타협에만 매달리는 이유 또한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보수의 위기를 비집고 제3정당을 준비 중에 있다. 애초 제3정당은 안 교수측이 검토했던 시나리오다. 비(非)한나라·비민주를 본떠 “탈이념, 가치정당을 지향한다”고 박 이사장은 설명했다.
◇ ‘통합만이 살 길’ 민주 = 민주당은 위기 극복 방안으로 통합을 내걸었다.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는 기존의 절박감에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까지 더해졌다. 내심 지분 출혈을 우려해 통합에 부정적이었던 광주·전남 의원들조차 10일 긴급 간담회를 갖고 “통합 전당대회 지지” 선언을 했다. 이로써 내홍은 일단락, 통합에 속도가 더해졌다.
동참한 한 의원은 “기득권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며 “정당정치의 위기만을 외칠 게 아니라 주어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가만히 앉아있다 안 교수를 중심으로 한 제3세력이 출현하면 모두가 죽는다”고까지 했다. 통합 대상이 친노가 주축인 ‘혁신과 통합’으로 좁혀졌지만 어떻게든 변화해 제3세력의 출현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내재됐기 때문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철수 출현으로 기성 정당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강화, 외부로 표출됐다”며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이를 확인한 상황에서 쇄신 또는 통합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위기감이 여야 내부에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