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은 뉴스부터 전하면 한국이 프레지던츠컵을 개최한다. 이런 축제분위기속에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차기회장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다.
2015년 프레지던츠컵을 열기로 확정된 것은 한국골프사의 큰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프레지던츠컵의 한국유치는 국내 프로골퍼 1호 故 연덕춘의 1941년 일본오픈 우승, 박세리(34·KDB금융그룹)의 US여자오픈 우승, 양용은(39·KB금융그룹)의 PGA챔피언십 우승, 그 이상을 의미한다.
특히 대회 주관방송사 미국 NBC를 통해 전세계 160여개국 5억명 이상이 시청하게 돼 한국은 국가 브랜드 가치의 엄청난 상승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IMF경제위기로 시름을 앓고 있던 한국인에게 ‘맨발투혼’으로 92홀 혈투끝에 정상에 오르며 희망을 안겨줬다. 또한 최경주(41·SK텔레콤)가 물꼬를 튼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한국 남자는 양용은이 아시아 선수 최초로 미국 메이저대회에서 태극기를 꽂았다. 사실 국내에서는 양용은이 저평가돼 있지만 아시아 골프계와 언론들은 양용은을 ‘골프영웅’으로 여기고 있다.
프레지던츠컵은 미국팀과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전세계 연합팀과의 맞대결을 펼치는 골프대회. 미국과 유럽의 그린전쟁인 라이더컵과 함께 세계 골프계의 양대 빅이벤트다. 따라서 이 대회의 한국 유치는 대한민국 골프의 위상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1996년 창설돼 2년마다 미국과 미국 외 지역에서 번갈아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은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이번 제 9회 대회까지 미국을 제외하곤 호주 2차례, 남아공, 캐나다 등 단 3개국에서 열렸다. 2013년은 미국에서 티오프 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당연히 처음이고 전세계에서 프레지던츠컵을 개최한 4번째 국가가 된다.
2015년 프레지던츠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낼 경우 국내 골프는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듬해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골프종목이 80년만에 부활 돼 더욱 뜻깊게 하고 있다.
프레지던츠컵의 국내 유치가 성사된 배경에는 KPGA 박삼구 회장의 결심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박 회장은 지난 2006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참관차 미국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티모시 핀첨 PGA투어 커미셔너를 만나 프레지던츠컵 개최에 대한 의사를 처음으로 전달했다. 이후 PGA투어 사무국 및 IMG 등과의 교류를 통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이와 병행해 박 회장은 당시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 및 청와대 비서관 등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대회 유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회장은 2009년 11월 내한한 핀첨 커미셔너 일행을 만나 2015년 프레지던츠컵의 한국 개최를 공식 제안했다. 그러나 2015년 대회 유치를 놓고 남아공과 아르헨티나, 일본, 중국 등이 보여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삼구 회장은 평소 친분이 각별한 핀첨 커미셔너에게 한국 개최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한편 조지 부시 전 미대통령 등과의 각별한 교분이 있는 ‘미국 통(通)’풍산그룹 류진 회장과 심도있게 프레지던츠컵의 유치를 논의했다. 이때부터 유치 계획에 탄력이 붙기 시작해 결국 프레지던츠컵이 국내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경사를 맞게 된 KPGA는 그러나 신임 협회장에 재계총수를 영입하려 있으나 일부 프로들의 욕심으로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19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아이언의 달인’한장상(71) 전 협회장은 류진 회장에게 협회장을 맡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으나 프로들의 ‘공증’이라는 무리수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대리 회장후보직을 사퇴했다. 한평생을 프로골퍼로 살아온 한장상 고문은 공개토론에서 후배들의 뜻하지 않은 욕심에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며 퇴장했다. 노구(老軀)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프레지던츠컵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