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제일 먼저 탄소배출권시장이 타격을 받았다. EU(유럽연합) 재정 위기도 한 몫 했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톤 당 20유로 이상에 거래되며 각광받던 탄소배출권(CER)은 폭락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3~4유로대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탄소배출권 사업에 투자를 해 놓은 많은 업체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쳤고 인수합병과 함께 전문인력에 대한 구조조정도 이어졌다. 과거 높은 가격에 배출권선물거래계약을 체결해 놓은 업체들은 계약 취소나 재협상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피해는 더 커지고 있다. 요즘은 탄소배출권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업체들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배출권가격이 너무 낮아 투자금 회수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탄소시장의 붕괴 가능성까지 거론되기 시작하자 이에 막대한 투자를 해놓은 EU가 다급해 지기 시작했다.
EU의회는 탄소배출권 사업에 대한 적정한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탄소배출권 가격을 올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이를 위해 시장에 공급되는 탄소배출권의 양을 인위적으로 줄여 배출권 가격을 올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일명 ‘Set Aside Plan.’
하지만 ‘정부가 탄소시장에 개입해 배출권의 가격을 억지로 회복시키는 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도 있고 배출권가격이 올라갈 경우 산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 실업률 증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반대 여론이 드세다. 특히 석탄사용량이 많아 탄소배출권을 다량 구입해야 하는 폴란드의 경우 기를 쓰고 이를 막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녹색성장을 위한 신성장동력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배출권거래제 법안이 최근 열린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가까스로 통과됐다. 정부는 반색하고 있지만 산업계는 2015년부터 짊어져야 할 온실가스 감축량에 부담을 느끼는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 대처를 둘러싼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 지구적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은 뭘까? 해결책은 ‘진실성’에 있다.
EU가 주도하는 탄소시장에 대한 세계 각국들의 참여와 지지가 저조한 것은 실은 불신 때문이다. EU가 순수하게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해서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 측면도 있다.
실제 EU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최고의 제도라며 야심차게 추진했던 CDM사업도 각종 비리와 부정에 휘말리며 비난을 받고 있다. 배출권거래를 위해 EU 구매기업들과 개도국들간 체결되는 거래계약서의 내용도 교묘하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성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EU가 진정으로 탄소시장을 부흥시키고자 하다면 다른 무엇보다 세계 각국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자신들의 순수한 의도를 확신시켜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방식보다 더 나은 온실가스 감축대안이 있다면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 2007년부터 지구온난화가 위협요소로 포함된 지구멸망시계가 11시55분을 가리키고 있는 현재,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희생과 양보가 필요하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