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에 위치한 중소기업 A는 최근 대기업들이 내놓은 상생지원책에 대해 시큰둥하다. 정작 필요한 기술개발 지원금은 터무니없이 적고, 상생펀드에만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며 생색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상생펀드는 기업과 은행이 공동으로 출자해 시장보다 낮은 이자로 협력 업체에 자금을 대출해주는 지원책이다.
A업체 재무담당 K 이사는 “대기업들이 펀드를 조성하는 이유는 은행으로부터 검증된 협력업체 만을 대상으로 지원하므로 90% 이상 회수가 가능해 수천억원대를 지원해도 실질적 부담이 적다”며 “정부에서 상생 압박을 가하다보니 대기업들은 상생 펀드 조성에만 열을 올리며 생색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기업보다 기술력, 인력이 모두 딸리는 중소기업들이 진정 필요한 것은 기술개발(R&D) 지원금이지만 이에 할당된 지원금은 ‘눈꼽’”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A는 나은 편이다. 아예 지원조차 받지 못한 업체들이 허다하다. 안산에 위치한 제조업체 B는 국내 많은 대기업들과 거래하는 알짜 협력업체 중 하나지만 단 1원도 지원받지 못했다.
대기업들이 외치는 상생에 대한 협력업체들의 반응은 이처럼 냉랭하다. 이들은 “상생정책은 정부와 대기업들의 ‘생색내기 용 홍보성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중소기업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책 마련 등 근본적인 처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1일 10대 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수천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대상으로 지원키로 한 투자금은 무려 4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중 60% 이상에 달하는 2조5000억원 가량이 회수 가능한 대출금인 펀드와 네트워크론 등에 할애된 반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R&D 지원금은 10대 그룹 모두 합쳐도 1조원이 채 안되는 것으로 집계됐다.<표 참조>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년간 동반성장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협력업체 50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한 중소기업 체감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현장의 체감 정도에 대해 절반 이상인 60.8%가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중소기업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과의 진정한 상생은 동반성장펀드 하나 달랑 만들어 놓고 저리로 대출해 주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지원을 받을 협력업체 선정 기준도 모호하다. 앞에서 언급한 B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10대 그룹 중 2곳에 꾸준히 납품하고 있는 협력업체로 ‘검증된’ 기업이지만, 그 어떤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협력업체 R&D 지원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기업도 있다. 최근 발표된 동반성장지수 산출 결과에서 ‘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들이다.
현대차그룹은 1585개 협력사에 4200억원 가량을 지원했다. 동반성장펀드 등의 대출금 외 60% 가량을 R&D, 시설투자비 등에 할애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지난해 동반 성장을 위해 투자한 비용은 약 5000억원 중 70%에 달하는 금액을 협력업체 R&D, 품질개선, 교육 등에 투자했다. 반면 각종 동반성장펀드, 민·관 공동투자 기술개발펀드, 신재생에너지 상생펀드 등의 조성금은 1600억원에 그쳤다.
중소기업계 다른 관계자는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과거에 비해 동반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며 “그럼에도 대부분 협력업체들은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인식이 강해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중소기업인들이 많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