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로 국내 게임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여겨져 왔던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손을 잡아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시너지를 낼 지 관심이 모아진다.
넥슨은 지난 8일 엔씨소프트 설립자인 김택진 대표로부터 엔씨소프트 주식 321만8091주(14.7%)를 주당 25만원에 취득해 최대주주가 됐다. 업계는 약 5년간 공들여 제작한 ‘블레이드&소울’의 출시를 앞둔 시점에서 김택진 대표가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줬다는 것에 놀라는 분위기다.
이 같은 파격 행보는 “살아 남아야한다”는 위기감이 단초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독자적으로는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경쟁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앞선 것이다. 최근 외국산 게임인 디아블로3와 리그오브레전드(LOL)의 PC방 점유율이 절반을 넘는 것을 보고 두 창업자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넥슨은 지난해 1조2190억원(연결 기준), 엔씨소프트는 6089억 원의 매출을 각각 올렸지만 두 회사 모두 북미,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작품은 없다.
넥슨 지주회사인 NXC의 김정주 대표는 최근 글로벌 2위 업체인 일렉트로닉아츠(EA)를 인수하려다 가격이 맞지 않아서 포기한 적이 있을 만큼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정주 대표와 개발력의 집합체인 엔씨소프트의 만남으로 국내 게임업계를 평정하고 글로벌 톱 3위권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매출을 합하면 글로벌 게임 3위 업체인 중국 텐센트(지난해 매출 2조8300억원)를 뛰어넘는다.
넥슨은 그동안 해외 진출을 앞둔 유력 게임을 회사 째로 인수하며 자사의 해외 네트워크와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전략을 펼쳐왔다. 따라서 넥슨의 글로벌 퍼블리싱 역량이 더해지면 엔씨소프트의 차기작인 ‘블레이드&소울’이 최대 온라인 게임 시장인 중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해외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양사가 가진 해외법인을 거점으로 체계적인 마케팅을 펼친다면 국산 게임이 글로벌 무대에서 흥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 큰 관심은 김택진 대표에게로 향하고 있다. 상징성이 있는 김 대표가 회사를 떠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8045억원이란 현금을 손에 쥐고 완전히 다른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매출을 게임 개발에 전부 투자해야 하는 게임 개발 구조상 흥행에 대한 압박감이 컸고 장기 성장 가능성에 회의를 느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김택진 대표가 지난 8일 엔씨소프트 종가인 26만원에도 못 미치는 주당 25만원에 판 것은 단순한 ‘캐시아웃(현금화)’이 아니라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특히 이번 빅딜은 과거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 당시 상황과 비슷해 김택진 대표가 네이버 이해진 의장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NHN의 경우 창업자인 이해진 의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전문 경영인을 내세운 뒤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한편 넥슨은 인수합병한 회사를 대부분 자회사로 편입했다는 점에서 엔씨소프트와의 향후 조직 통합도 관심사다. 양사가 이미 시장에서 독자적인 인지도를 차지하고 있고 두 회사의 서비스가 아주 다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기업 문화적인 측면에서 충돌이 예상된다. 현재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부사장과 동생인 김택헌 전무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