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잃은 신용평가사] 국내선 고평가 해외선 저평가… "도대체 뭘 믿으라는 건지"

입력 2012-10-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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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업 다른 평가… 평가기준 논란

웅진 사태를 계기로 증권사에 소속된 채권담당 크레딧(신용) 애널리스트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기업 눈치를 봐야 하는 신용평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객관적 위치에서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차라리 회사채에 투자할 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을 참고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충고한다. 그 만큼 국내 신평사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이 같이 국내 신평사들의 신용평가에 대해 신뢰가 실추된 것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은 국내외 신평사들간의 괴리다.

실제로 국제 신평사들이 한국 간판 기업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내리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신평사들은 이들 기업의 등급을 유지하거나 도리어 올려왔다.

무디스의 경우 지난 3일 포스코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포스코의 장기기업신용등급과 채권등급을 A에서 A―로 떨어뜨렸다.

이에 앞서 S&P는 지난달 LG전자의 장기채권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강등했다. 이에 반해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포스코 AAA, LG전자 AA 등 최고 수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신평사들은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즉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3대 신평사의 평가대상 기업(금융사 제외)은 6월 말 현재 370개로 2007년 말 406개보다 11.5% 줄었다. 하지만 AA등급은 39개에서 80개로 두 배 이상 늘었고, A등급도 100개에서 123개로 23% 증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인 BBB등급은 105개에서 66개로, 투기등급인 BB 이하는 154개에서 93개로 급감했다. 올해도 3분기까지 신용등급 상향조정은 31개인 반면 하향조정은 4개에 불과했다.

물론 국제 신평사와 국내 신평사의 평가 기준이 다를 수도 있고 국제 신평사의 평가가 무조건 맞다는 시각은 위험하다. 하지만 국내 신용등급평가로만 보면 기업들의 재무상태가 좋아져야 하는 상황에서 실상은 정반대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은 국내 신평사들의 신뢰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영업현금흐름(OCF)을 부채로 나눈 비율을 보면 6월 말 현재 AAA등급은 23.5%로 2007년의 37.9%보다 14.4%포인트 떨어졌다. AA등급은 21.9%에서 18.4%로, A등급은 19.6%에서 7.1%로 각각 감소했다.

신평사들의 등급 전망이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긍정적’ 또는 ‘부정적’ 꼬리표를 몇년 째 달고 있는 신용등급이 있는가 하면, 기업의 펀더멘털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거꾸로 신용등급 전망은 ‘긍정적’인 곳도 있을 정도다.

‘전망’은 향후 등급이 오를거나 내릴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실제로는 신평사와 발행사가 타협을 한 경우가 많다. ‘등급을 올려달라’는 발행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 때 등급 전망만 ‘긍정적’으로 바꿔 준다거나, 등급을 내리고 싶지만 발행사의 저항이 강할 때 전망만 ‘부정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시장 관계자는 “기업측에서 신용등급 상향을 요구하는 데 수준에 못 미치거나 신용등급을 내려야 하는 데 기업에서 반대가 심할 경우 등 등급 조정이 애매한 상황에 전망 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6월 A-에서 BBB+로 신용등급이 내려간 두산건설이 그러한 경우다. 신용등급을 내릴지,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할지 여부에 대해 3개 평가사가 의견 불일치를 보였으나 한국기업평가가 신용등급 하향 조치를 취하자 NICE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가 뒤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등급과 등급전망이 동일선상에서 고려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S&P나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전망을 ‘긍정적’ 혹은‘부정적’으로 조정한 후에는 6개월 이내에 등급 재검토에 들어간다. 만약 등급 전망을 연장해야 할 경우에는 그 사유에 대해 보도자료 또는 코멘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장에 알리고 있다.

반면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등급 전망을 ‘중기적인’ 상·하향 가능성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 때 중기적이란 향후 1~2년을 의미한다. 국제 신용평가사에 비해‘전망’의 유효기간이 긴데다가 검증 또한 미흡하다.

본래 등급 전망은 변경하기 쉽지 않은 신용등급의 성격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다. 그 때 그 때 이벤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가와 달리 신용등급은 경기변동에 일관하는 장기적인 평가인 만큼 단기적인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신용도에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 발생시 시기적절한 시그널을 주기 위해 등급 전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신용평가업계의 등급 전망 유효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특정 기업의 신용등급을 1년에 한 번씩 매년 올려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1년에 두 번 이상 등급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데 전망은 향후 2년 이내의 등급 변경 가능성을 반영한다고 하니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을 리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신평사의 경우 ‘긍정적’ 전망은 회사의 사정이 악화돼도 유지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부정적’ 전망은 회사 사정이 개선되면 빠르게 ‘안정적’ 전망으로 회복한다. 단기적인 실적 호전이나 재무구조 개선에 대해 회사측의 요구를 신용평가사들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 증권사 한 관계자는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금융시장이 시끄러운데, 이런 상황이면 늘 신평사의 뒷북 신용평가 대한 비판이 나온다”며 이는 모두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은 신용평가사 입장에서 평가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평가수수료를 지불하는 주요 고객”이라면서 “신평사 입장에서 수수료를 지불하는 고객과 외부에서 공짜로 신용등급을 사용하는 불특정 다수 중 고객의 입장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수수료를 받아야 하는 신용평가사 입장에서는 해당 기업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결국 이런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투자 판단의 최종 책임은 투자자에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번에 문제가 된 웅진그룹 회사채는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원리금 상환능력이 낮아 인기가 없었다”며 투자자들은 단지 이름을 들어본 기업이고 금리가 높아 투자를 결정하기 보다는 이같은 상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현명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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