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책사업에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편성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년도 예산을 배정받은 130여개 사업에 대해 다 쓰지도 못할 사업비를 잡아놓은 반면, 정작 꼭 필요한 복지사업 예산은 예상 수요에 비해 낮게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0~2세 무상보육까지 포기하며 정책 혼선을 빚은 상황에서 부실한 예산 편성으로 민생을 외면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23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13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을 배정받은 51개 중앙관서의 9000여개 사업 중 예산 과다 편성이 129개 사업(24.9%)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법·제도 미비 96개(18.5%), 사업계획 부실 54개(10.4%), 필요성·공익성 미흡 37개(7.1%) 순이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바이오·의료기술개발 사업은 내년 예산이 전년보다 12.3% 늘어난 1349억원이 배정됐다. 하지만 이중 신약개발예산(103억원)은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의 유사한 예산(110억원)과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예산정책처는 “리보금리를 적정 수준인 1.0%로 적용할 경우 내년도 차입자금 원리금 상환 규모는 약 2148억원이 된다”며 “실제 소요되는 비용보다 61억원의 예산이 더 잡힌 셈”이라고 설명했다.
문화관광부는 학생들의 토요일 스포츠활동 지원을 위해 학교에 스포츠강사를 두는 토요스포츠강사 배치사업 예산을 올해보다 201억원(1009%)이나 늘렸다. 하지만 이는 강사인력의 질을 담보하기 어려운 데다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예산을 뻥튀기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방위사업청이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사업을 하겠다고 확보한 564억원도 불용 예산이 될 것으로 지적됐다. 미국 수출 승인과 해외업체와의 구매 협상이 지연되는 등 사업 추진 가능성이 불투명해 올해 예산(611억원)이 대규모 이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수의 국책사업에 다 쓰지도 못할 예산이 불필요하게 편성돼 있지만 무엇보다 먼저 챙겨야 할 민생 예산은 수요보다 더 적게 잡은 것으로 분석돼 논란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 생계급여를 지급하는 사업에 내년 2조5902억원의 예산을 짰다. 월 평균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올해 예산상 155만명에 비해 12만명(-7.7%)이 감소한 143만명이라는 게 그 근거다. 그러나 실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2011년 146만9000명, 올 7월 말 현재 141만5000명으로 정부가 파악한 수치와는 크게 차이가 나 빈곤층 지원대책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기초노령연금 지급액도 올해 2조9665억원에서 내년엔 3조2097억원으로 늘렸지만 이 역시 기초노령연금 수급 노인 비율을 전체 노인인구의 66.0%로 산정해 법정 수급 비율인 70%에 못미치는 수준으로 편성됐다.
예산정책처는 국회 심의 과정에서 재검토가 필요한 사업의 전체 목록과 개선 방향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오는 31일 국회가 예산안 심의에 들어가게 되면 예산 삭감이나 집행 방식 개선 등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