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유섭의 증시 좌충우돌] 안 주려다 병 주는 상법

입력 2012-11-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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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벽치고 밭벽 친다.’ 겉으로는 도와주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방해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다. 상법이 제대로 안벽치고 밭벽을 쳤다. 올해 4월부터 시행된 상법에는 눈에 띄는 제도가 있다. 무액면주식 제도다. 회사가 상황에 따라 액면가가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바뀐 상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작 기업의 자유로운 주식 발행을 보장해 놓고도 법 규정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 실효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올해 4월부터 바뀐 상법 292조는 무액면주식 발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전에는 발행주식의 액면가는 100원 이상이여야 했다. 또 액면에 미달하는 발행을 하려면 주주총회의 특별결의와 법원의 인가가 필요했다. 새롭게 바뀐 상법은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회사가 액면주식 또는 무액면 주식 중 하나를 선택이 가능하다. 그러나 액면가 주식과 무액면 주식을 동시에 발행할 수 없다.

액면가 발행주식과 무액면 주식은 서로 전환이 가능한 셈이다. 과연 상장사들은 무액면 주식을 얼마나 이용할까. 업계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무액면 주식 발행에 대한 결정은 이사회가 손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주가가 매우 낮은 회사만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같은 법률 내에서도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현행 상법 462조는 '주식배당은 주식의 액면가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액면 주식은 주식 배당을 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작 회사의 선택권을 넓히려고 도입한 제도가 같은 법률 조항 때문에 제약을 받고 있는 셈이다.

상법 조항의 모순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해 상법에 규정된 상장사 감사위원회 설치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조항 문구 하나로 생긴 일이다. 일반법인(비상장사)들이 적용받은 감사위원회 조항과 상장사들이 적용받은 특례 조항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아 법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상장사가 일반법인과 같은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도 제재를 받지 않는 일까지 벌어졌다.

상법은 시장에서 신호등과 같은 존재다. 원활한 시장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또 시장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무액면주식 도입과 감사위원회 특례 등의 사례는 납득하기가 힘들다. 법률 조항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놓고도 쓰지 말라고 하는 꼴이다.

특히 상법을 맡고 있는 법무부는 향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상법에 근거 조항을 반영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업계 전문가들과 긴밀한 소통을 해야 한다. 법이라는 것은 실효성이 있을 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회사들이 쓸 수 없는 제도는 시장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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