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계속되는 아픔과 상처다. 영화 ‘26년’은 이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어 잊어서는 안 될 그날의 비극을 상기시킨다. 또 이 비극의 중심에 있는 전직 대통령에게 ‘아직도 죄를 인정하지 않느냐’고 다시 묻는다.
제작이 무산될 뻔했던 이 영화는 제작두레를 통해 전체 순 제작비 46억 원 가운데 7억여 원을 모아 제작비에 보탰다. 전국적으로 1만 5000여 명의 제작두레에 십시일반으로 참여했다.이 영화는 6년여의 기다림 끝에 빛을 보게 했다. 이에 제작사 영화사 청어람은 제작두레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엔딩크레디트에 올렸다.
영화는 인기 만화가 강풀의 작품을 영화화했다. 영화 도입부 광주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돼 원작 만화와의 연결점을 보여준다. 원작은 팩션(Faction)으로,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조합했다.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창작해 낸 장르다. 특히 26년은 광주민주항쟁의 중심에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26년’ 언론시사회에는 이를 뒷받침 하듯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26년’출연 배우들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었다. 진구는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광주 건달로 변신했다. 따뜻하기만 할 것 같던 한혜진은 차가운 얼굴로 냉정하게 총구를 조준했고 배수빈은 작전의 두뇌로 중심을 잡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경영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그동안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연기의 절정을 보였다. ‘26년’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임슬옹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후궁: 제왕의 첩’ ‘마이웨이’ ‘형사 Duelist’의 미술 감독 출신인 조근현의 감독 데뷔작이다.
대형 스크린에 걸린 한혜진의 얼굴에서는 심미진만 보였다. 예쁜 외모보다 극중 인물을 투영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녀는 배우였다.
한혜진은 “출연을 결심할 때 ‘내가 포기해도 배 아프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26년’은 다른 여배우에게 넘기면 배가 아플 것 같았다”고 작품에 대한 욕심을 밝혔다. 그는 미진 역에 대해 “확고한 자기 생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정말 잘 선택했다. 안 했으면 어쩔 뻔했지?‘라고 생각한다”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6년’에서 한혜진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불운한 삶을 사는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 역을 맡았다. 부모님의 복수를 꿈꾸던 미진은 전직 대통령을 단죄하기위해 모인 팀의 저격수로 작전에 가담한다. 차갑고 냉정한 성격의 미진은 타인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데 내 뱉는 말도 얼음장처럼 차갑다.
‘26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정치적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전직 대통령을 암시하는 영화 속 표현들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바 있다. 출연 후 행보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물었더니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사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직전까지도 주위에서 말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하고 싶었어요. 아직까지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요. 광고, TV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잘 하고 있고 드라마, 영화 시나리오 솔솔이 잘 들어오고 있어요. 다만 악플이 늘었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