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노리개’…스크린, 소재 선정주의에 빠지다 [박진희의 세태공감]

입력 2013-04-1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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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경악’ ‘실화’ ‘공분’…18일 개봉한 두 편의 영화 ‘공정사회’와 ‘노리개’를 수식하는 단어다. 그러나 영화는 시작부터 제작진이 먼저 흥분하고 있다. 소재를 차분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풀어나가면서 관객 감정을 상승시켜야 하건만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과 자극적인 묘사만이 난무해 소재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영화 제작 관계자들은 대중의 관심을 모을 법한 소재를 집어 들고 막무가내로 흥분하기 이전에 사건의 경위와 진실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을지,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파장으로 경종을 울릴 수 있을 지를 먼저 차분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두 편의 영화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 탓에 제작단계부터 ‘사회고발’이라는 수식을 달고 관객의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2011년 개봉했던 영화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돼 관객들의 공분 속에 466만명 동원을 하며 흥행 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잊히는 줄만 알았던 사건은 영화를 통해 재조명 돼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켜 법적, 제도적 개선을 가져왔다.

‘도가니’가 우리 사회에 발휘한 영향력 때문일까? 흥행 성적 때문일까? 영화계는 툭하면 ‘도가니’를 수식으로 단 작품을 내놓는다. 지난해 ‘제2의 도가니’로 주목 받았던 영화 ‘돈크라이마미’는 개봉 전 관심과 달리 뚜껑을 열자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주연 배우에 대한 연기력 논란이 일었을 뿐 아니라 사건을 따라가는 주인공의 침착한 시선과 통쾌한 복수를 바랐던 것과 달리 엄마의 복수극은 한심하고 즉흥적이었다. 결과는 관객 97만명 관객 동원이라는 참패로 돌아왔다.

18일 개봉한 ‘공정사회’와 ‘노리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돈크라이마미’와 닮은꼴인 ‘공정사회’는 열 살 난 딸을 성폭행한 범인을 40일 만에 직접 잡은 실제 엄마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엄마의 참혹한 복수를 다루지만 제작진은 ‘복수’라는 함정에 빠져 영화의 흐름을 깨트리고 말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장영남이라는 연기파 배우가 합류했고, 5000만원이라는 제작비로 단 9회차 만에 촬영을 완료하는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 작품이긴 하나 관객의 외면을 받고 소재의 의미가 퇴색됐다. 영화의 가치가 얼마나 될 지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연예판 도가니’라며 어김없이 ‘도가니’ 마케팅을 이어간 ‘노리개’는 한 수 위다. 감독조차 “ ‘이 소재라면 내가 계속 영화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얄팍한 생각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는 고백을 했을 정도로 접근 자체가 아쉬웠던 작품이다. 실제 영화는 모티브가 된 신인 여배우를 둘러싼 권력자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낱낱이 고발하거나 권력과 싸우는 기자와 검사의 안타까움을 다루는 대신 언론사 고위 간부의 자극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장면만이 잔상으로 남는다. 어릴 적 성폭행을 당한 적 있다는 검사의 과거는 갑작스레 튀어나와 캐릭터를 널뛰게 했고, 극을 이끌어가야 할 열혈 기자는 작위적인 설정을 던져주는 역할을 하는 등 현실성을 떨어트렸다.

‘도가니’의 감동과 분노 속에서 기대를 갖고 봤던 ‘돈크라이마미’, 한 번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문화상품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지켜 본 ‘공정사회’와 ‘노리개’ 때문에 관객은 오히려 실화 소재 영화, 특히 성폭행 등에 대한 작품에 피로감만 느끼게 될 게 뻔하다. 영화가 소재 선정주의에 빠지면 작품의 완성도도 소재의 명분도 모두 상실한다는 것을 두 영화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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