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중 칼럼]모두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

입력 2013-07-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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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 논설실장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에서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말을 소개했다. 정치인들이 상징 조작이나 이미지 조작 등을 통해 대중을 세뇌시키는 이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침략에 대한 편향된 인식의 일단을 다시 폈다. 그는 지난 3일 일본기자클럽 주최로 열린 당수 토론회에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인근 국가들을 침략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침략 여부에 대한 판단은 정치가가 아닌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했다.

우리 국민들을 분노케 했던 “침략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말에 비해 수위는 다소 낮아졌지만, 침략행위의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와 일본 국민들을 세뇌시키려는 국내용 발언이다.

일제의 침략 행위로 선량한 우리 국민들이 정신대와 강제노역 등 상상하기조차 싫은 핍박과 폐해를 입었지만, 일본은 오히려 우리의 산업화에 기여했다고 우기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발칙한 상상을 한번 해 보자. 일제가 한반도 식민지배가 정당하다고 내세우는 1905년 을사조약을 되짚어 보자. 이 조약에 찬성 서명한 박제순(외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완용(학부대신), 권중현(농상부대신)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면. 아베 총리의 주장처럼 역사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이들을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로 규정하고 을사5적이라고 부른다. 을사조약은 우리의 외교권을 포기하고 통감부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독립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NLL(북방한계선) 논쟁은 어떻게 결론이 날까?

국가정보원이 최근 공개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 회의록 사본을 놓고 여야는 물론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도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일 것이다.

야당은 회의록 사본 어디에도 포기라는 말이 없지 않느냐면서도 국정원 자료의 진위와 사전공개 등 형식과 절차를 문제 삼았다. 반면 여권은 NLL 이남의 해역에 평화수역을 설정하겠다는 자체가 NLL, 즉 영토 포기가 아니고 뭐냐고 반박한다.

여기에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새누리당의 공세에 대해 “외눈박이 식 사고”라고 지적한 후 “NLL 지역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아보자는 것이 서해 평화협력지대와 공동어로구역을 제안한 취지”라며 (평화를 위해) 그 같은 제안을 못 하느냐고 정당성을 부여했다.

또 “개성공단이 있다 해서 휴전선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NLL에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설정한다고 해도 NLL이 없어지지 않는다”며 “개성공단으로 휴전선의 긴장이 완화된 것처럼 이는 NLL을 둘러싼 긴장을 크게 완화시켜 주는 제안”이라고도 했다. 급기야 회의록 원본에서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폭탄선언도 했다.

국회가 마침내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과 녹음기록물을 열람하기로 합의하고 국가기록원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로써 진실 규명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까?

국가기록원은 조만간 열람 대상 자료와 대상자를 결정하겠다지만, 한정된 자료를 제한된 인원에게만 열람토록 할 가능성이 크다. 몇몇 사람만 보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면 진실을 밝혀낼 방법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NLL을 포기한다”고 말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에 대해 여권은 “전체 맥락에서 포기한 것 아니냐”는 종전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고, 야당은 “포기라고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포기한 것이냐”고 되받을 것이다.

결국 판단은 국민의 몫이지만, 국가기록물이 대중에게 공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남북 정상 간 회의록을 전면 공개한다면 앞으로도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후세에 역사가들은 어떻게 기술할까? 검정 한국사교과서에 대한 보수와 진보 학자들 간의 최근 논쟁을 보면 정당성 확보가 그리 쉽지 않은 터여서 학자들에 따라 이 문제 또한 다르게 쓸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어느 개그프로그램의 말투를 빌리면, “원본을 보면 뭐하겠노. 보고 나서도 서로 지 얘기만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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