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개막하는 뮤지컬 ‘위키드’의 모리블 학장 역을 맡은 배우 김영주가 의상을 접한 순간을 기억하며 한 말이다. 뮤지컬 기획사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는 “의상에 들어간 제작비가 총 35억원으로 모든 의상에 보험을 들었다”고 했다. 이 의상들은 오리지널 공연에서 쓰인 의상을 국내 배우에 맞게 피팅만 다시 했다. ‘위키드’의 의상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및 오페라 등 300개가 넘는 작품을 맡아온 디자이너 수잔 힐퍼티의 작품이다. 총 350벌의 의상에 영국산 고급 원단을 사용했고,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단순한 무대 의상을 뛰어넘어 ‘오즈의 마법사’의 환상적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무대 의상이 수십억원대로 제작되는 등 뮤지컬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되자 국내 사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뮤지컬 의상의 제작비는 2억~7억원 수준이다. 100억원 이상의 총 제작비를 들인 ‘엘리자벳’의 경우 3억5000만원이 의상에 투입됐다. EMK뮤지컬컴퍼니 관계자는 “370벌의 무대의상 모두 한정임 디자이너 의상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의상은 1막 마지막에 엘리자벳이 입은 흰색 드레스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제작된 것은 물론, 별 모양의 장식 등을 손으로 직접 바느질했다. 이 의상의 제작비는 3000만원이다.
서울에서 170회 장기 공연을 마친 ‘레미제라블’은 총 제작비 200억원 중 의상에만 6억~7억원을 투입했다. ‘레미제라블’의 경우 국내 한국어 초연을 위해 모든 의상을 새롭게 만들었다. 뮤지컬 제작사 레미제라블 코리아 관계자는 “영국과 국내 제작진의 협업으로 만들었기에 오리지널 공연에 사용된 의상과 차이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200벌의 의상 모두 아웃핏(외형)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 장인들의 손까지 빌렸다고 한다. 특히 극중 코제트가 입은 웨딩드레스 한 벌에만 1000만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이 밖에도 화려한 의상으로 시선을 끌었던 ‘스칼렛 핌퍼넬’의 의상 200벌에는 총 2억원이 들어갔다.
뮤지컬 관계자들은 무대 의상 고급화가 뮤지컬의 산업화와 같이 일어난 현상이라고 했다. 뮤지컬이 대중성을 획득하며 관객의 눈이 높아졌다는 해석이다. 서경대 무대의상연구소 노은영 연구교수는 “무대를 비추는 조명에 따라 소재의 질감이 미세하게 달라진다”며 “높은 수준의 관객들과 전문가들은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선 무대 의상의 변화가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의미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뮤지컬협회 박인선 간사는 “뮤지컬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원하는 그림을 만들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 의상의 고급화가 뮤지컬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전문가들은 그것이 작품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고 조언했다. 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스쿨 이유리 교수는 “작품의 배경과 성격에 따라 의상 제작비가 달라지는 것”이라며 “작품성을 단순히 비용 차원에서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