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를 추억한다는 것은 [홍샛별의 별별얘기]

입력 2014-03-03 06:46 수정 2014-03-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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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천재 시인으로 불리는 故기형도는 만 30년을 채 살지 못했다. 그는 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 종로 3가 파고다 극장의 한 좌석에서 29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죽음에 경중이 어디있겠냐마는 젊음의 죽음은 더 비릿한 피비린내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의 죽음은 유난했다. 갑작스러웠고, 슬펐고, 그래서 믿기지 않았다.

위대한 문학평론가 故김현은 갑자기 떠난 기형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 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 (중략) 그의 시들을 접근이 쉬운 곳에 모아 놓고, 그래서 그것을 읽고 그를 기억하게 한다면, 그의 육체는 사라졌어도, 그는 죽지 않을 수 있다. 그의 시가 충격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빨리 되살아나, 그의 육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육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김현 표현에 의하면)죽은 기형도를 다시 추억하고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돌아오는 그의 사망 25주기를 기리기 위해 광명시는 기형도 문학공원과 문학관을 만든다고 밝혔다. 기형도 문학공원은 2015년 KTX 광명역 주변 역세권에 들어설 예정이며, 2017년 이 공원 안에 문학관을 개관하기로 했다. 문학공원은 기형도가 살던 집터에서 산하나 넘은 자리로, 기형도의 시비와 각종 조형물, 육필원고, 사진 등이 전시될 계획이다.

현재 한국문학관협회에 등록된 문학관만 전국 65곳으로, 문학관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각 지자체는 지역 출신 유명 문인과 지역 홍보를 연계할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 결과 1990년대 초반부터 하나둘 문학관이 개관되기 시작했다.

문인들이 남긴 흔적을 보존하고 전시해 후대에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이런 현상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문학관의 증가에 비해 문학관에 대한 의미와 운영에 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하다. 때문에 기형도 문학관 건립이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묘하게 못미덥다.

지난해 소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의 동생인 김상옥 송파문화원 부원장은 순천시가 추진하던 김승옥과 정채봉의 ‘복합문학관’ 설립을 두고 “문학관이 단순한 전시를 통해 보여주기만 한다면 그것은 박물관에 지나지 않아 금방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살아 숨 쉬는 문학관’이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하응백 문학평론가는 문학관이 문화 공간이자 문학의 산실 역할을 하기 위해 다음의 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이용객들에게 설명과 안내를 해줄 수 있는 전문 인력 배치, 둘째, 소장 자료의 DB화, 셋째, 지역 특수성과 연계된 문학관 특화, 넷째, 청소년 문학교육 및 문학 심포지엄, 학술 세미나 등의 장소로서 활용, 다섯째, 문인의 적극적 참여, 자원봉사, 일반인의 적극적인 이용의 유기성.

2017년 개관을 앞둔 기형도 문학관은 ‘단순한 전시관’이라는 기존 국내 문학관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광명시는 하 평론가의 제안을 바탕으로, 기형도 문학관을 좀 더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살아 숨 쉬는 문학관’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기형도가 좋아하는 선배였던 김훈은 추모사를 통해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고 말했다. 기형도는 현재 우리 곁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돌층계에 앉아 플라톤을 읽던 문학청년을 여전히 사랑하고 추억한다. 그리고 기형도를 추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를 읽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어라, 짧았던 밤들아/창 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빈집’,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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