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정부기관 관계자가 최근 기자를 만나자마자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다. 정책을 만드는 정부 부처들이 중복되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적으로 중소기업 지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애꿎은 실무기관 관계자들만 국회에 쫓아다니며 해명하는 현재의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본질적인 문제는 대통령에 대한 공무원들의 넘치는 충성심(?)에 있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관련 부처들이 의식적으로 중소기업 정책 및 지원 사업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세부적으로 다듬어지지 못한 정책과 지원 사업들이 종종 발견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 취임 1년에 맞춰 최근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여전하다. 3개년 계획 가운데, 관련 14개 부처의 중소기업 지원 사업은 무려 200개에 달했다. 200개의 지원 사업이 모두 다르다면 상관없지만, 중복되는 사업이 많다는 게 문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일부 중소기업 지원 사업들이 보여주기식 정책의 일환으로 잘못 비춰질 수 있는 이유다.
근본적으로 중소기업 육성 정책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보여주기 식의 중복 사업들은 정작 국내 중소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예로 산업부가 추진 중인 ‘글로벌 전문기업’ 후보군에 속한 기업들의 약 40%는 중기청의 ‘월드클래스300 프로젝트’ 사업에도 해당한다. 똑같은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중복 지원을 받는 셈이다. 더욱이 월드클래스300 기업들의 일부는 매출 1조원이 넘는 자체 경쟁력이 있는 회사들이어서 실질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중소ㆍ중견기업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원은 필요한 곳에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잡음이 새어나올 수 밖에 없다. 실제 최근 기자와 만난 ‘1조 클럽’ 중견기업 관계자도 “최근 월드클래스300 사업의 성과와 회사의 매출 1조원 등극을 연결 짓는 보도자료가 나왔는데, 솔직히 월드클래스 사업이 매출 1조원 달성에 크게 영향을 줬다고 언급하긴 어렵다”며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매출 1조원 규모의 기업이 R&D 자금 일부를 지원 받았다고 해서 이를 정부 정책의 효과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지극히 현실적인 지적이다. 매출 1조원 이상의 중견기업들에게 수억원의 R&D 자금 지원은 더 이상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미 클대로 큰 중견기업들은 기준을 정립해 지원 대상에서 졸업시키고 규모에 맞는 다른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옳다.
이런 관점에서 기획재정부가 최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포함된 200개 중소기업 지원 사업을 통폐합하기 위한 검토작업에 착수한 것은 바람직하다. 새로운 정책과 사업을 늘릴 것이 아니라 쓸데 없는 규제부터 줄이는 것이 우선 과제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손톱 밑 가시’로 불리는 각종 규제들을 점진적으로 완화시켜 살 길을 모색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