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치솟는 분노 앞에 새엄마의 사랑으로 아이들이 건강하게 그리고 가족의 정을 느끼며 성장한다는 말은 설 자리를 잃는다. TV, 신문, 인터넷 매체가 앞다퉈 갈비뼈 16개가 부러지도록 때려 숨지게 한 ‘울산 계모 사건’ 기사를 쏟아낸다. 동생(8)을 장 파열로 숨지게 하고 언니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칠곡 계모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계모는 이제 아동학대의 주범이 됐다. 2014년 4월 대한민국에서의 계모는 전처의 자식에 대한 폭력과 학대를 넘어 살해하는 단계까지 이른 극악무도한 악인이라는 인식이 수많은 사람의 머리에 똬리를 틀었다. 그것도 견고하게 말이다.
계모는 진정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 사건의 주범인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찬열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아 13일 발표한 자료를 보자. 2013년 한해 동안 보고된 아동학대 사건은 6796건으로 1년 전보다 393건 늘었다. 아동학대를 저지른 사람 중 부모가 80.3%에 달했다. 부모 가해자 중 친부(2790건)와 친모(2383건)가 94.8%였다. 반면 계모에 의한 학대는 144건(2.6%), 계부에 의한 것은 108건(2.0%)으로 4.6%에 그쳤다. 가정에서 자행되는 아동학대 대부분이 친부모에 의한 것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현실은 이렇다. 그런데도 친부모가 아닌 이 땅의 수많은 계모는 아동학대를 저지른 주범이고 전처의 자식을 살해하는 흉악무도한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있다.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 매스미디어의 행태 때문이다. 수많은 매스미디어는 울산과 칠곡 사건의 본질이 ‘계모’가 아닌 ‘아동학대’인 데도 눈길을 끌기 위해 ‘계모’라는 극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거나 확대 재생산했다. 수많은 매체가 ‘계모=아동학대 주범’이라는 뉴스 틀 짓기(News Framing)에 열을 올린 것이다. 그 결과 이 땅의 계모들은 전처 자식을 구박하는 간악한 엄마라는 편견과 차별 그리고 왜곡으로 얼룩진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게 됐다.
뉴스뿐만 아니다. 영화, 드라마 등 수많은 대중문화 작품에서도 계모는 전처 자식은 학대하고 친자식만을 끔찍이 챙기는 악녀의 아이콘으로 천편일률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요즘 방송되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선 친자식에게만 맛있는 음식을 주고 전처 자식은 구박하는 전형적인 악덕 계모가 나온다. 최근 끝난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도 계모는 시댁 식구와 남편이 보지 않는 곳에서 전처 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악한 악녀의 모습이었다. 편견과 왜곡으로 얼룩진 악녀 계모의 스테레오타입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 아니 점점 더 폭력성, 악마성, 자극성을 강화하고 있다.
매스미디어가 주도하고 있는 계모에 대한 주체 구성과 지배적 이미지, 관습적 서사는 이처럼 매우 부정적이거나 왜곡돼 있다. 계모를 다룬 뉴스, 드라마 등 프로그램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신화 역시 정확한 현실 반영 대신 편견과 왜곡으로 점철돼 있다.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계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왜곡된 신화는 수많은 사람에게 계모에 대한 나쁜 편견을 심어준다. 더 나아가 계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다.
미디어 학자 거브너(George Gerbner)는 그의 계발 효과이론(cultivation effect theory)을 통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사람은 사회의 제반 문제를 미디어에서 구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미디어에 의해 전개되는 자극성으로 무장하고 악의와 편견으로 가득 찬 계모에 대한 이미지를 접한 수많은 사람은 이 땅의 계모들을 미디어 속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것은 계모에 대한 차별과 인권, 행복권의 무차별적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계모의 가정생활과 사회활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사회와 가정환경의 급변으로 이혼과 재혼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계모도 크게 늘었다. 새엄마의 존재로 인해 수많은 아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계모=악녀’의 등식은 미디어에 의해 견고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이 땅의 수많은 새엄마들은 가슴을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