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칠 동원시스템즈 부회장은 업계에서 '구조조정의 전도사', '퇴출기업 전문주치의' 등으로 통한다.
그가 지난 1997년 사장으로 부임한 한국전기초자는 적자규모 598억원, 부채비율 1114%의 부실기업이었지만 3년만인 2000년 영업이익률 35.35%로 상장업체 1위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또한 연간 적자규모가 820억원이었던 동원시스템즈도 2002년 그가 경영을 맡은 지 3년만인 지난해 부채를 다 청산하고 200억원의 경상이익을 남겼다.
이처럼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정 받은 불량기업도 서 부회장의 손만 거치면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붙여진 별명들이다.
하지만 서 부회장 본인은 저서인 '지금은 전문경영인 시대'라는 책의 제목처럼 '프리랜서'형 전문경영인으로 불려지기를 원한다.
즉 어떤 회사에 몸담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회사를 선택해 원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키우는 능동적인 전문경영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재계에서는 서 부회장처럼 '일감(회사)'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경영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이른바 '프리랜서 사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의 M&A 시장이 활성화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기업들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면 경영능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프리랜서 사장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과거 주로 외국계기업이 국내에 상륙할 때 프리랜서 사장을 많이 채용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구조조정이나 퇴출기업들의 구원투수로서 프리랜서 사장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이호림 쌍방울 사장, 박병무 하나로텔레콤 사장, 박해춘 LG카드 사장, 전명헌 현대종합상사 사장 등이 대표적인 프리랜서형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2~3차례 이상의 CEO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모두 기업의 위기 속에서 일종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른바 퇴출기업 혹은 구조조정 기업의 전문주치의로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이호림 사장이 쌍방울에 취임할 때인 지난해만도 회사는 법정관리와 경영권 분쟁의 긴 터널을 가까스로 뚫고 나온 기진맥진 그 자체였다. 쌍방울을 인수한 대한전선이 이 사장을 선택한 이유에는 글로벌 기업인 펩시, 월마트, 몰렉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을 두루 거친 경영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
이 사장은 얼마 전 40년 넘게 써온 쌍방울이라는 사명을 과감히 벌리고 '트라이브랜즈'를 새롭게 런칭 시키는 모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다양한 소비재 및 서비스산업의 최고경영자를 거치면서 얻은 감각과 경영수완을 회사에 접목하고 있다.
박병무 사장이 올해 초 하나로텔레콤의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됐을 때 시장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가 국내 최고의 기업인수합병(M&A)전문가로 평가받기 때문에 하나로텔레콤의 조기매각을 위해 대주주인 AIG-뉴브릿지컨소시엄이 박 사장을 낙점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뉴브리지의 제일은행 인수, 페레그린의 미도파 인수 등 박 사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M&A물건만 50여건에 이를 정도로 시장에서 그는 '마이다스의 손'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반면 그의 경영수완을 보고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과거 영화사인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대표 시절 '엽기적인 그녀' 등 몇몇 영화를 히트시켜서 양수겸장의 CEO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시장에선 AIG-뉴브릿지컨소시엄에서 올해 초 대표이사로 그를 영입했던 이유로 '기업가치 제고'와 '기업매각'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 어느 한 마리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 사장은 'CEO'시장에서 몇 안 되는 프리랜서형 CEO로 각광받는 인물이다.
박해춘 사장의 전문영역은 한마디로 '부실기업 정상화'다. 부실회사인 서울보증보험을 맡아 정상화시켰다는 점을 내세워 2004년3월 LG카드 사장직에 취임하면서 프리랜서형 CEO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LG카드를 맡은 이후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는 1년여만에 흑자기업 탈바꿈을 했고 최근에는 금융계 M&A물건 가운데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전명헌 사장은 사장명함이 3년 만에 3번이나 바뀌었다. 2002년 기아자동차 해외영업본부장, 2003년 에델만코리아 회장, 2004년 현대종합상사 사장 등 거의 1년에 한번 꼴로 CEO자리를 옮겨다닌 셈이다.
그는 현대종합상사의 대표이사를 맡아 4년 간의 적자기업에서 탈피,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회사 내부에선 전명헌 사장의 경영스타일을 '스피드' 경영으로 꼽는다.
사실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경영인은 많다. 하지만 전 사장의 시간 관념은 여느 CEO와는 차원이 좀 다르다.
거의 광속에 비견할 정도의 속전속결 '초스피드'경영이라고 할 정도다. 예를 들어, 사원들이 올린 보고서나 품의서에 대한 결재를 미루는 법이 없고 대부분 의사결정은 바로 내려진다.
결재를 받으러 임직원들이 찾아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보고서를 만든 직원과 사장이 함께 그 자리에서 보완을 해 완성시키는 셈이다. 이 회사의 임직원들은 전 사장의 초스피드 경영에 동화된 상태다.
이처럼 프리랜서CEO가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여주면서 재계에서도 이들에 대한 러브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다른 회사 출신을 새로 CEO로 임명한 기업만 30여 곳에 이른다.
일례로 한화그룹은 지난해 11월 진수형 전 산은자산운용 사장을 한화증권 사장으로 스카웃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서울프라자호텔(한화개발)의 사장에 조선호텔 상무 출신의 김광욱씨를 영입하기도 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융업과 호텔업을 강화하기 위해 검증된 프리랜서형 전문경영인을 스카우트한 것이다.
이처럼 수요가 늘자 미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품귀현상과 함께 몸값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프리랜서 사장의 이직을 전담하고 있는 한 헤드헌팅업체 관계자는 "기업환경이 변화면서 외부로부터 사장을 영입하려는 수요는 점차 늘고 있는 데 반해 기업들이 원하는 ‘사장감’이 흔치 않아 애를 먹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에서 다채로운 이력과 경영실적을 갖은 소수의 프리랜서CEO들에게 몰리는 경향이 강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강한 양극화를 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설명: 좌로부터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부회장, 이호림 쌍방울 사장, 박병무 하나로텔레콤 사장, 박해춘 LG카드사장, 전명헌 현대종합상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