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묻거나 그만두게 하는 것도 그렇다. 권한 있고 힘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국무총리건 장관이건 천하에 없는 현자를 앉혀 둔 것도 아니다. 내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문제를 푸는 것은 다르다. 문제의 원인과 구조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며, 이해관계의 조율을 통해 합리적 결론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또 필요한 인적·물적자원과 정치사회적 자원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어렵더라도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쉬운 길만을 가지 않는다.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책임을 돌리거나 책임을 묻는 데 그치지도 않는다. 국민이 관심을 가졌건 말건 늘 문제를 직시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또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이 나라의 정치와 그 지도자들은 어떤가?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무슨 문제건 터진 다음에야 떠들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문제들이다. 그것도 문제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다. 비난과 조롱에 손가락질이 대세다. 문제 그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들리느니 대통령 사과에 내각 총사퇴 운운이었다. 물어보자. 대통령이 사과하고 내각이 사퇴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정치권이나 정부의 정책역량이 높아지나? 명색이 정치로 밥을 먹고 사는 프로들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허수아비 정당이나 언론들이 하던 주장이나 되풀이하고 있어서야 되겠나.
책임을 묻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스스로의 낮은 정책역량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유사한 문제를 막기 위한 체계적인 정책적 노력들이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다.
대통령 담화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유족과 국민의 슬픔을 위로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런대로 들을 만했다. 책임을 묻는 부분도 괜찮았다. 특히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관행을 넘어 해양경찰청이나 안전행정부 같은 기관에 책임을 물은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공직사회에는 적지 않은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 그 자체와 관련해서는 실망이 크다. 프로다운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관피아 문제만 해도 그렇다. 문제의 핵심은 관피아 그 자체가 아니라 관료집단과 시장(市場)의 유착이다. 당연히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그리고 공식·비공식 네트워크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넓고도 단단한 구도에 대한 생각이 녹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모든 문제를 관피아 문제로 돌렸다. 또 그후에는 법무법인에서 고액 연봉을 받던 인사를 자세한 설명이나 변명 없이 이 유착구도를 타파할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문제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다.
관료집단을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도 그렇다. 관료도 사람이다.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불리의 구조를 따라 움직인다. 잘못된 유·불리의 구조가 문제이지 관료집단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가만 두지 않겠다’는 위협이나 칼을 높이 들어 해결할 문제는 더욱 아니다.
공직개방에 대한 낭만적 시각도 프로답지 않다. 우리 사회의 한정된 인적 풀을 감안할 때 개방은 오히려 유착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민간 인력이 시장의 이해관계를 지닌 채 관료조직을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문제로 돌아가 고민해야 한다. 정치권은 더 이상 내각 총사퇴나 외치는 천박한 정치를 그만두어야 한다. 문제로 돌아가 문제 그 자체에 더 천착해야 한다. 이 슬픔을 겪고도 문제로 돌아가지 못하면 이 나라의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 타도의 대상이 될 뿐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도 그렇다. 문제를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많은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국가개조라는 말을 쉽게 쓰는 것이 그렇고, 공론을 거치지 않은 채 담화문에 거친 개혁안을 담는 것이 그렇다. 다시 이야기한다. 문제로 돌아가라. 그리고 제대로 보고 제대로 고민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문제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