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에 사는 주부 이지혜(29)씨는 2일 슈퍼마켓에서 먹거리를 구입하다 깜짝 놀랐다. 반찬용 롯데 비엔나(220g)는 3020원, 간식용 해태제과 오예스 한 상자(12개입)는 4800원, 롯데제과 빼빼로(52g)는 1200원, 코카콜라 1.5는 2900원이나 해서다. 만원 한 장 갖고 나온 게 화근이었다. 콜라는 사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먹거리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작년 초 각종 조미료 가격이 오르더니 여름에는 우유로 이어졌다. 올 들어서는 제과, 제빵, 음료 등 전방위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막걸리, 햄도 가세했다. 라면과 맥주도 꿈틀대고 있어 서민 가계 부담만 커질 전망이다.
냉장햄 1위 업체 롯데푸드는 돼지고기 가격 상승분을 반영해 이달부터 일부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CJ제일제당과 대상 등 경쟁업체의 가격 인상 발표도 이달 중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한 업체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빌미로 제품 가격을 올리면 경쟁업체들도 줄줄이 따라 가격을 인상하는 식이다. 가격 인상은 평균적으로 1위 업체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4월에 오른 막걸리도 배상면주가가 가격을 올리지마자 국순당과 서울장수가 가세했다. 제과, 제빵, 음료 등도 선두업체를 중심으로 도미노 인상이 이뤄졌다.
국내 식음료 시장의 도미노 가격 인상이 가능한 이유로는 ‘독과점 구조’가 꼽힌다. 가격이나 점유율 경쟁이 치열한 산업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1위 식품업체 CJ제일제당은 밀가루, 설탕, 고추장 등 기초식품 분야에서 독점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샘표(간장), 대상(간장, 고추장), 동서식품(커피믹스), 롯데칠성음료(사이다) 등도 사실상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담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가격 담합에 대한 정부 조사를 촉구했다. 협의회 측은 “한 식품업체가 가격을 올리면 평균 40일 이내 다른 업체가 따라 가격을 인상하는 형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며 “암묵적인 담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업체들이 내세운 근거(원재료 가격 인상)도 타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협의회 측은 “롯데푸드가 주재료인 돼지고기 가격 인상을 가격 인상의 주요 근거로 밝혔으나, 이는 돼지고기 가격 추이를 볼 때 산출 근거가 없는 업계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돼지고기 가격은 2012년부터 2년간 하락 안정세를 나타냈다. 2011년 대비 2014년 돼지고기 가격은 하락했다. 최근 돼지 설사병 등으로 다시 돼지고기 가격이 전년 대비 올랐지만, 6월부터 다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인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제 원재료 시세는 아몬드를 제외하면 대체로 하향세다. 설탕은 40% 이상 내렸고 원당, 버터 등도 두 자릿수 이상 떨어졌다.
각종 ‘꼼수’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질소과자’ 논란이 대표적이다. ‘질소과자’는 과자 내용물은 적게 넣고 완충재인 ‘질소’를 가득 넣어 판매하는 식품업체의 꼼수를 지적한 신조어다. 용량을 내세운 상술도 있다. 롯데제과의 ‘빼빼로’는 이번 가격 인상 때 용량 20% 증가를 내세웠다. 그러나 1997년과 비교하면 빼빼로 용량은 10g 증가한 반면, 가격은 6배 뛰었다.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용량을 늘릴 땐 가격을 올리고, 줄일 땐 가격을 그대로 두는 정책을 반복하면서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면서 “개별 원재료의 가격 추이를 알 수 없는 소비자의 약점을 이용해 손쉽게 제품가를 올리고 이윤 확대를 꾀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음식료 가격 인상이 이뤄지면서 아직 가격을 올리지 않은 라면과 맥주도 가격 인상이 임박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라면과 맥주는 필수 소비재에 가까워 가격이 오르면 어떤 품목보다 큰 반발이 예상된다”면서 “지방선거 이후 가격이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