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기억이자 추억으로 남아 있던 보릿고개가 풍요로울 줄만 알았던 21세기에 ‘글로벌 보릿고개’로 다시 등장했다. 전 세계적 식량파동이 도래해 돈이 있어도 식량을 수입할 수 없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7월과 8월 사이 홍수와 가뭄 등을 일으키는 이상 기후현상인 엘니뇨가 발생할 가능성이 60%이고, 10∼12월에는 75∼80%로 더 높아진다고 예상했다.
또한 이미 여러 국가들이 엘니뇨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WMO의 권고에 따라 이에 대한 대비를 시작하고 있다. 엘니뇨는 통상 2∼7년 주기로 발생하며 최근에는 2009년과 2010년 사이 발생한 바 있다. 지난 7월 발생한 대형 태풍 ‘너구리’가 다행스럽게도 한반도를 비켜갔지만 일본에는 상당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유발했다.
지구 밖에 우주정거장도 건설하고,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을 해결하는 21세기 첨단시대이지만, 여전히 지구촌은 언제 발생할지 모를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특히 태풍, 홍수, 가뭄, 고온, 저온은 농업분야에 치명적 피해를 준다.
1980년 발생했던 대규모 냉해로 쌀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국제 쌀시장의 수입량이 급증해 1980∼1981년 국제 쌀 가격이 평년 대비 29.4% 급등한 적이 있다. 또한 2010년 여름 러시아에서 발생한 심각한 가뭄으로 자국민 보호를 위해 2011년 6월까지 밀 수출을 금지, 그해 국제 밀 가격이 평년 대비 무려 97%나 급등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보고서에 의하면 한반도에 이상고온이 발생할 경우 쌀 수량은 5.8∼16.3% 감소하고, 이상 강수량이 발생할 경우에는 1.0∼2.5% 줄어든다고 한다. 이는 향후 이상기상 발생빈도 증가로 쌀의 공급 불안이 야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WMO의 예측대로 올 겨울 밀 수출국들에 심각한 가뭄이 발생한다면 2010년 밀 가격 폭등의 재현으로 내수경제 활성화 조치들에 외부요인이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잦은 이상기후에 의한 곡물생산의 불확실성 속에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살아야만 하는가. 우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방법은 없을까.
겨울철 평균기온이 온난해 동계작물 재배가 가능한 호남의 경작지는 전국의 약 44%로 그중 63% 이상이 논으로 벼뿐만 아니라 보리, 밀 재배가 가능하다. 엘니뇨현상에 의한 전 세계적 곡물 파동이 발생했을 때, 호남지역에는 벼 수확 후 연속해 보리, 밀을 재배하는 2모작 경작을 할 수 있는 면적이 약 30만ha 가까이 된다. 비상시 이들 경작지에 겨울철 밀, 보리를 재배하면 2000만명이 넘는 수도권 국민이 6개월 이상 먹을 수 있는 곡물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시에 총, 대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충분한 총알과 포탄이 없다면 그 많은 무기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따라서 언제 발생할지 모를 전 세계적 곡물 파동을 대비해 우선적으로 10만ha의 겨울철 유휴지에 언제든지 파종할 수 있는 보리, 밀 각 1만톤을 공공 비축물량으로 확대하기를 제안한다.
못 이겨낼 위기는 없다. 보릿고개를 이겨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처럼 각계의 지혜를 모아 글로벌 보릿고개에 대비하자. 세계적 기상이변으로 밀, 옥수수 등의 흉작이 발생하더라도 비상시 일정 양의 식량을 자급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