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으로는 시장경제와 수평적 계약의 외양을 띠고 있으나, 실제로는 거부권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갑을관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상가권리금이 법제화되지 않았을 때, 갑을관계의 부조리함은 증폭된다. 상가권리금이 2억원이고, 임대료가 300만원인 임차인 A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인 B가 임차인 A에게 300만원 하던 임대료를 1000만원으로 폭등시켰다고 가정해 보자. 시장경제의 장점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다면, 임대료 폭탄에 대한 임차인의 합리적 대응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차인 A의 입장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권리금 2억원을 ‘날릴’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차인 A는 권리금 2억원을 날리고 임대료 폭탄을 거부할 것인지, 권리금 2억원을 보존하고 임대료 폭탄을 수용할 것인지의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된다. 둘 다 안 좋은 선택이다. 이와 같이 권리금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할 때, 권리금은 임차인이 임대인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인질’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시장경제의 민주성이 작동되기 위한 핵심적 전제조건인 ‘거부권’은 무력화된다. ‘시장경제의 본질’에 반하는 시장경제가 판을 치게 된다. 임차인들에게 시장경제는 피눈물의 공간으로 각인된다.
상가권리금은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참사의 발단이기도 했다. 당시 용산의 임차인들은 ‘실체’로 존재하는 권리금에 대해 ‘실질적’ 보상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상가권리금은 ‘법’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실체는 있으나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상가권리금이었다. 결국 무리한 진압이 시도됐고 임차인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1월 20일 용산참사 5주기를 기념해 대한민국 국회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상가권리금 보호에 관한 법’을 대표 발의했다. 최근 정부 역시도 상가권리금 보호법의 대강을 발표했다. 상가권리금은 법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거부권이 제대로 작동될 때 빛을 발휘하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갑을관계가 민주화되기 위해서. 용산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 수많은 상가 임차인들의 설움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