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는 금호산업 인수전에서 롯데가 참가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자, 이를 철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롯데가 금호산업 본입찰에 우회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어서 불안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금호산업 인수전을 둘러싸고 하루 동안 인수 참여와 철회를 오갔다. 이와 관련 신세계그룹 측은 27일 "금호산업의 계열사인 금호터미널에 광주신세계가 입점해 있어 영업권 방어 차원에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며 "그러나 경쟁업체 롯데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만큼, 향후 지분 매각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의 이같은 선택은 금호터미널에 입점된 신세계 광주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신세계는 2013년 금호터미널에 20년간 5000억원의 보증금을 내고 장기 임대 중이다. 광주신세계의 영업이익률은 20%를 웃돌 정도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13년 신세계 인천점을 롯데에 뺏겼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신세계는 인천시로부터 부지와 건물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었으나 인천시가 부지를 롯데에 일괄 매각함에 따라 임차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다. 당시 신세계 인천점의 건물 임차 기간은 2017년, 신축 건물의 부지 임차 계약기간은 2031년까지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광주에서도 같은 일을 반복해서 당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LOI 제출은 롯데로부터 광주 부지를 지키기 위한 선제적 방어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롯데가 금호산업 인수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은 아직 열려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IB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의 우회 참여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금호산업 입찰에 참여한 사모펀드와 미리 접촉해 비지니스가 성사가 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신 회장은 금호터미널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최종 무산됐지만, 지난 2011년 대한통운 인수를 통해 지분 100% 보유하고 있는 금호터미널을 차지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LOI를 제출한 사모펀드와 제휴해 금호터미널 등의 소유권만 가져가게 되면, 신세계 입장에서 난감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다만, 이 경우 롯데는 '꼼수 진출'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