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유럽 국가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이탈리아 상업은행 유니크레딧(UniCredit)은행은 전 세계적으로 8500개가 넘는 지점과 14만7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대형 은행이다. 특히 동유럽을 관할하는 오스트리아 은행을 중심으로 동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과 홍콩, 중국, 싱가포르 등에 지점을 내며 아시아에서도 활발한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점 대신 사무소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고금란 대표는 유니크레딧 한국사무소에서 유럽과 한국의 기업 여신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리셉셔니스트에서 대표가 되기까지= 사무소는 영업 지점에 비해 조직의 크기가 작아 전문성만큼이나 멀티플한 능력이 요구된다. 고금란 대표는 ‘대표직’에 앉아 있지만 어시스턴트가 처리할 법한 자잘한 업무도 맡아 한다. 일당백이다. 고 대표는 “바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고 대표의 시작은 파리바은행의 리셉셔니스트였다. 서울대 출신이 리셉션데스크에 있는 게 좀 그렇지 않느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개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하찮게 바라볼 수도 있지만, 리셉션 업무 역시 상당히 프로페셔널해요. 처음부터 중요한 일이란 건 없는 것 같아요.”
리셉셔니스트로 일하면서 수없이 많은 전화를 받아 연결했고, 엄청난 양의 보고서와 파일을 정리하고 복사했다. 그 과정에서 금융의 기본을 다지고 흐름을 파악했다. “업무는 보고서로 말해요. 리셉션 업무는 모든 파일과 보고서를 쉽게 접하는 장점이 있잖아요. 오가는 전화와 각종 보고서로 은행의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리셉션 업무 과정에서 심사역(Credit Analyst)의 리포팅 업무에 매료된 고 대표는 우연히 심사부장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여신 심사역이 되는 방법을 물었다. 조언에 따라 영어와 회계 공부를 시작했고, 2년 후 심사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에도 신용분석과 여신심사 교육 등 관련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는 피나는 노력 끝에 이탈리아 상업은행 유니크레딧의 한국사무소 대표 자리에 앉았다. 고금란 대표에겐 준비하는 자에게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는 믿음이 있었다.
◇유럽과 한국의 엔트리포인트= 지난 2011년 유니크레딧 한국사무소 대표 자리에 오른 고 대표는 유럽과 한국의 엔트리 포인트(Entry Point)로서 중간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유럽의 수많은 국가는 고 대표를 통해 한국 기업의 정보를 수집하고, 한국 기업은 고 대표를 통해 유럽 진출을 꾀한다.
유니크레딧은행이 세계 지역은행 인수를 통해 몸집을 불리자, 고 대표의 업무 또한 비대해졌다. 한 국가의 여신심사에 국한됐던 고 대표 업무는 전 세계의 기업 여신 업무로 확대됐다. 고 대표는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수많은 동유럽 국가의 기업 여신 담당자들과 보고서로 소통해야 했다. 여러 국가 금융당국의 관리를 받게 되며 그는 각 국가와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 주력했다.
그는 솔직함을 무기로 본사와의 밸런스를 맞춰 나갔다. 클라이언트인 한국 기업과 유니크레딧 본사 양측에 내ㆍ외부 사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동유럽에 진출하길 원하는 클라이언트에게도 진출 시 장ㆍ단점을 모두 알려 드려요. 사실 우리를 통해 진출하게 된다면 실적도 오르고 좋죠. 하지만 무조건 권하진 않습니다. 각 기업에 맞게 실익을 현실적으로 조언해요. 장기적으로는 이 편이 낫더라고요.” 본사 측 역시 고 대표의 이런 고집과 뚝심을 알고 있다. 때문에 고 대표의 선택과 행동을 신뢰한다.
◇국내 유일의 동유럽 전문가= 고 대표는 동유럽 소재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길 원하면 어카운트 오픈부터 시작해 관련 은행ㆍ기업 등과의 작은 약속 주선까지 도맡는다. 산업과 영업 환경을 분석해정보를 제공하는 건 기본이다.
한국 기업의 경우 사소한 서류 번역이나 이메일 문제로 고 대표에게 연락하기도 한다. “보통 무역 거래를 할 때 L/C나 페이먼트가 잘못되면 스위프트를 보내면 되지만, 가끔 제게 연락을 취하는 경우도 있어요.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은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이런 상황에 닥치면 당황해하곤 해요. 도움을 드리면 기쁘죠.”
25년간 유럽 은행에 몸담아 온 고 대표의 최대 강점이자 유니크레딧은행의 강점은 동유럽에 강하다는 것. 고 대표는 “국내 기업은 동유럽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동유럽 소재 기업 역시 한국에 대한 정보에 약하다”면서 “오랜 세월 동유럽을 기반으로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니 관련 업계나 산업 동향에 밝은 편이다.
또한 유니크레딧은행만큼 동유럽에 강한 은행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니크레딧은행은 동유럽을 관할하는 업계 2위의 오스트리아 은행과 로컬 3위의 독일 은행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며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요즘 매우 뿌듯하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업무를 본인이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은 외국계 은행을 심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데, 외국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전 수시로 동유럽 등 다양한 국가의 업무와 영업 활동을 체크할 수가 있죠. 업무에 도움이 많이 돼요. 국내에도 이런 시스템이 도입돼 은행과 기업의 해외 진출이 더욱더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