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산하의 연방보안국과 CIA는 휴대전화 기지국을 본뜬 비행기를 띄워 특정 휴대전화의 위치를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 기술은 형사 범죄 용의자나 테러 용의자 등을 추적하는 데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술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해당 기술이 일정 범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휴대전화 정보를 자동으로 전송하다 보니 수사와 무관한 일반시민의 휴대전화 정보까지 무차별 수집해 버린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 국정연설에서 강조한 사이버 보안 강화 관련 법안 입법 추진의 의도가 이런 것이었던가.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연설에서 “개인이나 국가, 그 누구도 미국의 네트워크를 해킹하거나 기업 비밀을 훔치거나 국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한 달 뒤인 2월 13일에는 일부의 기업 수장에 대한 비밀정보 이용 허가의 신속화 등 기업의 정보 공유를 수월하게 할 목적으로 마련된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그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임무는 공유돼야 한다. 정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민간 부문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며 해당 영(令)에 대한 당위를 내세웠다.
일련의 사건들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한 사이버 보안에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비약하자면 정보기술(IT)이 집약된 실리콘밸리가 본의 아니게 NSA나 CIA의 하수인 노릇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대로 된다면 현지의 기업들은 정부에 협력하기 위해 자사의 고객과 사용자를 감시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에서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달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사이버 보안과 소비자 보호 서밋(Summit on Cybersecurity and Consumer Protection)’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총대를 멨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직전에 단상에 올라 “책임있는 지위에 있는 우리가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돈보다 훨씬 중요한 무언가를 잃을 수 있다”며 “우리의 생존 자체가 리스크에 노출된다”고 경종을 울렸다. 평소 과묵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그가 이처럼 목소리를 높인 것은 고객 정보를 수집하는 정부에 대해 IT 업계가 불신하고 있다는 업계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었다.
미국 정부와 실리콘밸리의 이같은 갈등은 정부의 기술력이 민간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스노든이 인터셉트(The Intercept)에 제공한 문서에 따르면 CIA는 아이폰이 출시되기 이전인 2006년부터 애플의 모바일 기기에 ‘백도어’를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CIA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개인정보를 암호화하는 데 사용되는 보안키의 크래킹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게 성공하면 CIA는 비밀번호를 풀어 개인 메시지에 접속하거나 모니터링도 가능하게 될 참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CIA의 시도가 성공했다는 언급은 발견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첩보 실력을 자랑하는 CIA조차도 애플의 철통 보안은 뚫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10일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어’를 운영하는 위키미디어재단은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NSA와 법무부를 메릴랜드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스노든이 공개한 문건에서 위키미디어가 NSA의 정보수집 표적이 됐었다는 내용이 언급됐기 때문이다. 위키미디어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민이 NSA나 CIA에 자신의 정보가 노출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집단 소송은 불가피하다. 그 경우 실리콘밸리의 모든 기업이 정부의 뒤처리 전담반이 되는 것은 아닐까.
IT 산업은 인간의 한계 이상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모든 산업은 IT로 귀결되고 있다. CIA 본부가 실리콘밸리로 옮겨올 가능성도 이제는 예견해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