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이완구 국무총리는 최근 자진 사퇴를 표명하고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칩거하고 있어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야 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총리 업무를 맡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반대하며 오늘(24일) 총파업을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발하며 이번 총파업에 동참했다.
이번 국무총리 사퇴 표명은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에 일어난 일이어서 사상 초유의 국정공백 사태를 발생케 했다. 이런 가운데 각 부처 공무원들은 공직기강 확립과 인사적체로 눈치 보기가 극에 달해 사실상 업무에서 손을 놓고 있다.
강도 높은 공직기강 확립을 주도했던 이 총리는 각종 패러디의 주인공으로 부각되며 국민의 조롱거리를 넘어 정부의 정책 신뢰성마저 상실하게 했다. 오죽하면 정홍원 전 총리까지 ‘야 아무나 1억만 좀 줘봐. 이러다 또 총리하게 생겼다’라는 패러디의 주인공으로 다시 부각했을까.
정부의 수장들이 국민의 신망을 얻기보다 조롱의 대상이 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 살리기 정책과 구조개혁은 힘이 빠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제프리 존스 변호사가 평가한 한국인의 문제점이 새삼 떠오른다. 존스 변호사는 35년간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가장 잘 아는 외국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참여정부 출범 시절 초대 경제부처 장관으로 존스 변호사를 전경련 등 재계가 추천할 정도로 신망이 두텁다.
존스 변호사는 강연때마다 “경제성장을 하려면 고질적인 단 한 가지 조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바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병’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한국인이 배가 아픈 이유는 “바로 투명성, 일관성, 그리고 예측가능성 없는 사회”라고 지적한다.
먼저 존스 변호사가 지적했던 투명성 문제는 ‘세계 물포럼’ 국제행사에서 박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정상들이 참석해 개회식 퍼포먼스로 펼쳤던 자격루(물시계) 구조물이 넘어지는 사건 처리 문제에서 잘 드러난다.
청와대가 경호문제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이 퍼포먼스를 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물포럼조직위원회는 행사를 강행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샀다. 하지만 성완종 사건에 묻혀 아직까지 행사를 주관했던 국토교통부는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이 자격루 행사를 기획했던 기획사 공동대표가 모 국회의원의 부인이라는 점에서 국토부와 물포럼조직위, 청와대가 아직까지 함구하고 있는 것은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지금이라도 투명하게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우리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국가·기업·가계부채 문제의 정부 해결 방안에서 잘 나타난다. 컨트롤타워 부재로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등 부처마다 해결 방안이 서로 달라 엇박자를 내면서 오히려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져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이 표심을 얻고자 선심성 정책을 주문하면서 오히려 가계부채 문제는 더 심각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지금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선심성 탕감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저출산·고령화, 남북한 통일문제, 노동시장·공공 부문·교육 개혁 등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정책들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5년 단위로 핵심 정책이 바뀌고 있어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지금 4월은 정부가 주장했듯 경제 살리기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내년 총선과 다음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이 가속화해 더는 정책을 추진할 힘을 상실하게 된다.
이젠 성완종 리스트는 검찰을 믿어보고 여야 정치인이 힘을 합쳐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에 그 어느 때보다 주력할 상황이다. 다음 세대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