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제독 진린(陳璘)이 표현한 대로 충무공은 ‘경천위지지재 보천욕일지공’(經天緯地之才 補天浴日之功)이었다. 천지를 경영하는 재주에 하늘과 해를 다시 손봐 바로잡은 공로가 있다는 뜻이다.
충무공이 한산도에서 읊은 시 중에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꿈틀거리고 산에 다짐하니 초목이 알아듣네”[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가 있다. 무슨 맹세이며 얼마나 엄숙한 다짐이기에 물고기와 초목이 다 알아들었을까? 충무공이 칼에 새긴 검명(劒銘)과 비슷하다.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도 얼굴이 달라지는구나.”[三尺誓天 山河動色] 또 다른 칼에는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산하가 피로 물든다”[一揮掃蕩 血染山河]고 새겼다.
서해맹산은 맹산서해라고 쓰기도 한다. 해군교육사령부가 2012년 10월에 개관한 서해관의 이름도 서해맹산에서 따온 것이다.
충무공은 노량해전 당시 관음포로 달아나는 왜군을 추격하다가 탄환을 맞았다.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는 게 유언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선조실록의 사관은 “그의 단충(丹忠)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쳤고, 의를 위하여 목숨을 끊었네. 비록 옛날의 양장(良將)이라 한들 이에서 더할 수 있겠는가. 애석하도다! 조정에서 사람을 쓰는 것이 그 마땅함을 모르고,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주를 다 펼치지 못하게 하였구나. 병신년·정유년 사이 통제사를 갈지 않았던들 어찌 한산도의 패몰(敗沒)을 초래하여 양호지방(兩湖地方:충청·전라도)이 적의 소굴이 되었겠는가. 그 애석함을 한탄할 뿐이로다”라고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