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솔잎을 깨끗이 씻어 시루에 켜켜이 깔고 빚어 둔 송편을 쪘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면 솥에서 기분 좋은 소나무 향이 퍼졌다. 송편에는 솔잎이 찍혀 가을을 먹는 느낌이었다. 송편을 송병(松餠) 혹은 송엽병(松葉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솔잎에 떡을 찌기 때문이다.
민족의 명절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한 해 중 가장 풍성한 시기로 햅쌀, 햇곡식, 햇과일 등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해-’와 ‘햇-’은 ‘그해에 난’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해팥, 해쑥, 해콩처럼 뒤에 된소리나 거센소리가 오는 명사에는 ‘해-’가 붙고, 햇감자, 햇사과, 햇병아리 등 예사소리인 명사에는 ‘햇-’이 붙는다. 그런데 ‘그해에 난 쌀’은 ‘해쌀’이 아니고 ‘햅쌀’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추석은 달의 명절이다. 미당 서정주는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라는 시에서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 오고/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라고 노래했다. 특히 올 한가위에는 ‘슈퍼문(Super Moon)’이 뜬다니 고향 마을을 휘엉청 밝혀 줄 것이다. 슈퍼문은 지구에 가장 가까운 보름달로 더욱 크고 밝다.
그런데 보름달이 이지러진 후 눈썹 모양으로 뜨는 달은 초승달일까, 초생달일까? 한자 초생(初生·갓 생겨남)에 ‘달’이 더해진 꼴이니 초생달이 바른 표현일 법하다. 그런데 ‘초생달(初生-)’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초승달로 발음이 굳어져 초승달만이 표준어로 올랐다. 즉, 한자에서 왔지만 순 우리말처럼 변한 말이다. 따라서 매월 초 하늘에는 초승달만 뜰 뿐 초생달은 절대로 뜨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인 이승과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인 저승 역시 어원은 ‘이 생(生)’과 ‘저 생(生)’이다. 이 같은 음운 변화를 ‘전설모음화’라고 한다.
“추석에 내려왔다/추수 끝내고 서울 가는 아우야/동구 단풍 물든 정자나무 아래/차비나 혀라/있어요 어머니/철 지난 옷 속에서/꼬깃 꼬깃 몇 푼 쥐어주는/소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 손길….”(김용택 ‘섬진강 17-동구’) 추석 연휴만큼은 마음속 고민을 툭툭 털어내고 가족, 친지들과 즐겼으면 한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송편을 빚으며 술 한잔 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부모님의 건강, 형님의 사업 성공, 조카의 취업 등 소원도 빌어 보자.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만큼 정겹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