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재계 인사철을 앞둔 11월의 단상

입력 2015-11-09 10:55 수정 2015-11-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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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년규 산업1부장

11월만 되면 오래전 한 대기업 임원에게서 들은 씁쓸한 얘기가 떠오른다.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사무실에 있는 개인 비품을 집으로 옮겨 놓아야 할 때죠. 직원들에게 표나지 않게 퇴근할 때마다 한두 개씩 가방에 넣어 집에 쌓아 놓습니다. 12월 인사에 퇴직 대상이 될 경우 이것저것 꾸겨 넣은 종이상자를 가슴에 안고 사무실을 터덜터덜 걸어나가야 하는 것을 보여주기 싫어서죠. 착잡한 마음에 애처롭게 쳐다보는 직원들의 눈길이 꽂힌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종이상자가 없으면 그냥 퇴근하는 것처럼 조용히 나올 수 있잖아요.”

이 임원은 오래전 한 선배가 퇴직 통보를 받은 날 가족사진, 옷, 구두 등을 넣은 사과 상자를 안고 나가는 모습을 본 이후, 본인은 그렇게 퇴장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둘은 우연히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는데, 1층에 도착하는 시간이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좁은 공간에서 질식할 뻔했다는 말까지 했다.

그 임원은 올해도 어김없이 개인 비품을 퇴근 때마다 아무도 몰래 하나씩 집으로 옮기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12월 정기인사가 지나 그 물건들을 다시 사무실 제자리에 갖다 놓을 기회가 오면 좋겠다.

재계의 인사철이다. 기업마다 ‘누가 나갈 것’이라는 ‘카더라’ 소문도 많이 돌고 있다. 불경기 여파로 실적이 곤두박질친 곳은 임원의 3분의 1이 짐을 쌀 것이라고 한다. 정규직이면서도 1년 계약직이나 다름 없는 임원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음까지 추울 수밖에 없다.

요즘같이 구조조정 바람이 거셀 때는 임원뿐 아니라 모든 직장인이 역풍을 맞기 마련이다. 40살이 넘으면 퇴직을 준비하고, ‘45살에 정년 퇴직한다’는 ‘사오정’은 이미 익숙한 단어가 됐다. 그래서 스산한 요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회식자리에선 ‘퇴직 후 뭐하지’라는 단골 메뉴가 어느 때보다 더 인기란다.

50세 전후면 한창 일할 나이다. 산업 일꾼으로서 역량을 비교해도 어느 연령대에 뒤지지 않을 나이다. 60세 이상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젊은이들 못지않다.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퇴직이 몰리면서 이들의 ‘인생 2모작 설계’는 이미 사회 문제가 됐다.

산업의 이방인이 되어버린 퇴직자 대부분은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도 다시 생계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서 창업 아니면 재취업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하지만 치킨집 등 소규모 창업 두 곳 중 한 곳이 2년 내 문을 닫는 상황에서 ‘무작정 창업=바보짓’ 공식은 기본 상식이 됐다. 그렇다면 재취업인데, 과연 쉬울까. 퇴직 관련 전문가들은 퇴직 전에 재취업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어떤 이는 퇴근 후 2시간을 퇴직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데 투자하라고 말한다. 누가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지적 수준이 의심된다. 영악한 일부에겐 가능하겠지만,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어느 누가 다음에 다닐 회사까지 알아볼 수 있겠는가.

퇴직자가 사회 경험이나 전공을 더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직장을 얻기란 바늘구멍만큼이나 어렵다. 일부 지자체가 중장년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나 부실하기 짝이 없다. 재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대다수가 임시·일용직에 그치고 있다.

중장년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쓰레기 치우듯 폐기하는 것은 경제의 누수와 다름없다. 그들의 경륜을 기업이 다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퇴직자와 기업 수요를 연결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구직자는 넘쳐나는데, 중소기업에선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불평하는 인력수급 불균형도 해소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니로는 70대에 인턴을 지원하는 동기를 “돈보다 중요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임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퇴직자의 재취업은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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