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합의가 완료된 일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시점이 묘하다. 금감원이 합의 내용을 금융위원회에 전달한 이후여서 모종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가 피감기관도 아닌 금감원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믿긴 싫지만 진 원장이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재합의에 나선 이유가 따로 있을까 싶다.
애초에 금감원이 제시한 ‘3년 210%’도 313개 공공기관이 도입한 임금피크제 평균인 ‘3년 229.9%’보다 퇴보한 처우다. 이마저 재협상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가 적용한 ‘4년간 285%’ 수준으로 맞추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기간은 늘고 임금은 낮은 형태다. 구체적으로 이 기준까지 제시한 실체는 없다는데 이미 금감원을 떠난 임금피크제 합의안은 3개월째 광화문과 여의도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가 처음 생길 때부터 예견된 불협화음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더욱 금융위의 일방통행이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금감원 조사국과 업무가 겹치는 자본시장조사단이 금융위에 설립되면서 금감원 특별조사국은 2013년 설립 이후 2년 만에 부서 폐지설이 나오고 있다. 이미 조사 부서에서 다수 인력이 금융위에 파견 나가 있는데다 특별조사국 설립 취지인 자체 인지, 기획조사 사건 등 굵직한 주가조작 범죄는 대부분 자조단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금융위가 불공정거래 신고 통합 사이트를 신설하려다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이미 불공정거래 신고 홈페이지는 금감원과 한국거래소에서 각각 운영하고 있다. 2000년부터 15년간 운영해 온 신고·접수 시스템의 노하우와 전문 인력을 고려하면 금융위가 권한 확대에 눈이 멀어 무리수를 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현재 금감원은 금융위 재가 없이 감독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위에는 차출된 금감원 직원이 없으면 돌아가지 못하는 부서가 여럿이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금융감독 당국이 둘로 나눠진 사례다. ‘혼연일체’를 표방하며 하위기관을 잠식하기보다는 각자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