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걸음 이내에 시를 지어 칠보시(七步詩)로 유명한 조식은 어려서부터 시재가 뛰어났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남조(南朝)의 송(宋)나라 시인 사령운(謝靈運)은 “천하의 재주를 열 말이라고 한다면 조식이 여덟 말을 차지한다. 한 말은 내가 갖고, 나머지 한 말은 천하 사람들이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그런 조식이 오질에게 보낸 편지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계중은 오질의 자(字)다. “술잔에 가득한 술이 앞에서 넘실거리고, 퉁소와 피리가 뒤에서 연주하면 그대는 독수리처럼 비상하여 봉황이 탄복하고 호랑이가 응시할 것이니 한 고조의 명신 소하(蕭何)나 조참(曹參)도 그대의 짝이 될 수 없고, 한 무제의 명장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도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할 것이니 어찌 그대의 장한 뜻이 아니겠습니까?”[左顧右眄 謂若無人 豈非吾子壯志哉]
이처럼 좌고우면은 원래 좌우를 살펴보며 자신만만해 하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었는데, 점차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게 됐다. 오질은 아주 오만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위(魏)나라에서 진위장군(震威將軍)을 지냈고 열후(列侯)에 봉해졌다.
좌고우면은 좌우고면(左右顧眄) 우반좌고(右盼左顧) 좌우고시(左右顧視) 좌면우고(左眄右顧)라고도 한다. 최근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의원의 혁신 전당대회 제안을 거부하면서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